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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1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이라는 거창한 꼬리표를 달고 있다. 이러한 꼬리표가 도서구입의 중요한 선택기준이 되는 경우도 다반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예 작가의 일개 장편 소설이 독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내게도 이 꼬리표가 기준의 하나였지만, 애초에 작가 김별아와 '미실'의 이름을 접한 것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이다. 이리저리 서핑을 하는 도중 갑자기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자 마광수가 등장했다". 마광수라면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 알것이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필두로 '즐거운 사라'로 필화를 입고 무수한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그러한 마광수라는 별칭을 여성작가에게 부여하다니, 금방 호기심이 생겨 도서관을 조회하니 대출중이라 그냥 구입해버렸다. 검증되지 않은 작가의 소설책은 잘 사지 않는 내 구매패턴에 하나의 예외라 할만하다.
'미실'은 화랑세기에 나오는 여인의 이름이라고 한다. 굳이 인용체를 사용하는 까닭은 내가 화랑세기를 읽어 보지 못하였음에 있다. 화랑세기는 김대문에 의하여 통일신라시기에 지어진 화랑의 세기, 나아가서는 신라 지배층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그동안 이름만이 전하다가 십여년전에 필사본이 발견되어 진위여부를 놓고 한동안 떠들썩한 기억을 남겼다. 그 안에 서술된 내용은 종전의 신라사회에 대한 인식을 뒤바꿔 놓을만큼 황당하다시피하였다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수한 근친혼과 자유로운 성의 난립이다. 근엄한 유학자가 보기에는 황음무도하기가 이를데 없는 불순하기 짝이 없는 위서일 밖에.
그곳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 중 작가의 관심을 끈 여인이 바로 '미실'이다. 여성으로서의 유대감의 발로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작가가 소망하는 힘있는 여성의 이념형으로 그가 새삼 조명받게 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미실'에 대한 관심은 작가 이전에도 화랑세기 연구가의 호기심을 끌기도 한 걸 보면(이종욱 '색공지신 미실') 평범한 여인네는 아니리라.
역사속의 인물이야 그렇다 치고, 왜 작가 김별아는 다시금 문자화된 인물에 살과 뼈를 불어넣어 21세기의 현대사회에 부활시키고자 했을까? 그리고 그의 이런 노력은 과연 값진 성과를 이룩했는지?
작가의 이력을 보니 성적인 테마에 주목한 것이 처음은 아닌듯 싶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라는 작품도 있으니. 그리고 십년 이상의 문단 경력을 쌓은걸 보니 단순한 센세이션 노림수도 아닌듯 싶다. 더더욱 궁금하다.
우선 이 작품에는 낯설은 역사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그것도 귀에 익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삼국시대의 신라의 것이. 더구나 법흥왕부터의 가계도가 무수히 얽혀 있어서 책을 보다가 앞부분의 가계도를 들척이는 경우가 너무 잦아 내용이해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다. 워낙에 낯선 소재와 배경이니 그 정도는 양해하도록 하자. 반면 장점도 있으니 그것은 작가가 고어의 아름다움에 주목하여 의식적으로 순순한 우리말 용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한 점이다. 그것이 주는 상큼한 효과는 간혹 느슨해지기 쉬운 전개에 조미료 역할을 하고 있다.
내내 마음속에 의문을 품는다. 작가가 굳이 '미실'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쓴 이유가 뭘까? 그리고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유교적인 사회문화체계가 가동되기 이전의 자유분방했던 성적 관계에 대한 그리움, 말도 안되겠지. 성을 무기로 권력을 움켜쥔 과거 여인의 페미니즘적 동경이 그것일까, 그래서 현대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찬미하고 싶은걸까. 아니면 그저 순수하게 과거에서 미래를 앞서간 한 여성의 일대기를 심리적 관점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인지도.
확실한 건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였건 소설 내부에서 다층적으로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순수한 사랑에의 동경을 가진 순결한 처녀이기도 하며, 불구의 천민을 입에 품으면서의 그녀가 다분히 성녀의 이미지를 자아낸다면, 권력을 움켜쥐고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온갖 암계를 도모하는 그녀는 간녀에 다름아니다.
담담한 심경을 품고 죽음을 기꺼이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한줄기 성스러움이 배어나오기조차 한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 것은 과연 작가가 '미실'의 생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모르겠다. 그대는 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