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밖의 예수 - 믿는다는것 2
일레인 페이젤 / 정신세계사 / 1989년 6월
평점 :
절판


<다빈치 코드>는 명성과는 달리 내게 특별한 감흥을 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고 하겠다.

이 책은 제목과는 달리 성서 밖의 예수를 직접적으로 서술하지는 않는다. 혹시나 예수의 숨겨진 삶의 궤적, 막달라 마리아와의 결혼생활과 자식 등에 대한 기대를 품은 나같은 독자들에게는 꽤나 실망이다. 원제는 'Gnostic Gospels' 이니 '영지주의 복음서'라고 해석이 가능하겠다. 즉 지금은 이단으로 낙인찍혀 잊혀진 초기 기독교 시대의 복음서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오늘날 신약성경은 꽤나 정련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출발부터 완비된 상태에서 성경이 확립된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견해와 논의가 백화난만하던 시기, 기독교는 발전의 도상에서 방법론을 가지고 크게 대립하였다. 그것이 정통파와 영지주의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익히 알고 있듯이 정통파의 승리이고, 정통파의 최고사제는 가톨릭의 교황이란 명칭으로 불리운다.

20세기 후반에 발견되어 놀라움을 안겨준 나그 함마디 문서를 통해 저자는 이단시되었던 영지주의가 주장하던 내용이 무엇이고 이들이 어떤 연유로 이단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차분하게 풀이하였다.

영지주의는 어찌보면 불교의 소승불교 혹은 선불교와 유사점을 지닌다. 예수, 하나님으로부터의 외적 구원이 아니라 내적 깨달음을 통한 구원이라는 개념이 대표적이다. 부처와 마찬가지로 예수는 누구나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다. 그것을 깨닫는 과정이 곧 신앙이며 깨달았을때 예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도 영지주의는 인간 예수가 아닌 성령적 존재에 초점을 맞추었고 따라서 신도들이 헛되이 순교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영지주의는 정성적인 특성을 추구했으며 따라서 수행과정이 용이치 않은 단점 때문에 스스로 소수파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순교가 주는 효과는 너무나 강렬하다. 뭐든지 비둘기보다는 매가 주목을 받게 마련이다. 더구나 정통파는 예수를 믿고 사도와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면 신자로 받아들였다. 모든 사람이 투철한 수련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점에서 초기 기독교가 유럽 각국 나아가 세계종교화하는 과정에서 결국 영지주의는 도태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정통파의 탄압은 오히려 부수적이다. 영지주의의 몰락은 차라리 자체의 숙명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영지주의의 교리는 여전히 유효성을 상실하지 않고 있다. 가톨릭의 형식주의와 권위주의에 반발하여 각종 종교개혁이 발생한 것이 그러하다. 또한 기독교의 엄격한 남성중심적 권위체제는 반여성적 멍에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고정된 사제의 직위가 존재하지 않고 남녀 누구나 사제가 될 수 있고 비교적 평등하게 인정받았던 영지주의는 현대의 페미니스트에게 환영받은 소지가 다분했을텐데.

그동안 몰랐던 성경의 숨겨진 측면을 새로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꽤나 유익하다. 특히 창세기 인류의 탄생을 두고서 정통파와 영지주의가 중시하는 구절이 상이한 점도 인상적이다. 조물주와 하나님을 구별하여 독선적 조물주를 갈파한 점도 흥미롭다.

요컨대 기존 성경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또는 성경이 맘에 안들어서 삐딱하게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방대한 원서 '나그함마디 문서'를 이해하는 첩경이 되는 책으로서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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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9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5.11.23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