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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과 제왕 1 - 대륙의 별, 장군 고선지
이덕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먼저 고선지 장군의 위대한 업적와 일대기를 알고자 하는 이라면 이 책에서 분명 당혹감과 실망감을 갖게 될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여기서 고선지라는 인물은 당대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매개체로서의 의의를 지닐뿐이다.
이덕일 역사서라고 책 표지에 당당하게 직서하고 있듯이, 이덕일만이 갖는 역사서술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역사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주제와 주인공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를 둘러싼 폭넓은 공간적 시간적 지평을 확대하여 그 속에서 다시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가 그러하며, <정약용과 형제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서술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미시적 접근이 놓치기 쉬운 거시적 파악, 즉 역사 전반에서 당해 인물과 사건이 갖는 위치와 한계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의 이러한 접근방식은 학문적인 측면에서는 몰라도(왜냐하면 나는 전문적 역사학자가 아니므로) 적어도 대중적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거기다가 개인적 미덕인 소설을 능가하는 박진감 넘치는 문체도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이제 이덕일이 근대사에서 고대사를 시야를 돌아보고 있다. 그리고 당찬 포부를 내세웠으니 <장군과 제왕>이 그것이다. 왜 하필 이덕일은 대표적인 고구려 유민 두 사람의 엇갈린 삶을 대칭적으로 내세웠을까? 그들은 대조영과는 달리 당나라의 내부에서 고구려인으로서 굵직한 획을 긋는 인생을 살았다. 그들의 삶과 선택은 천년도 훨씬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어떤 의의를 지니는 것일까 이런저런 궁금증이 떠오른다.
도중에 가끔 고선지에 대한 언급이 나오긴 하지만 고선지가 전면에 떠오르는 것은 책의 3분의 2가 경과한 지점에서다. 그때까지는 당 고종과 측천무후, 당 현종의 소위 '개원의 치'가 상세히 서술된다. 특히 또하나의 고구려 유민인 왕모중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왔다.
이어서는 고선지와 안녹산의 엇갈린 인생이 병치된다. 다같이 오랑캐인 두 걸출한 장군이 어찌 승승장구하고 또 어떻게 생사의 기로에서 어긋나는지. 이제까지 안녹산은 어쩌다 현종과 양귀비의 총애를 받아 출세가도를 달린 무능한 무장이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런 그가 당나라 북방의 국경을 책임지고 거란족을 복속시킨 나름대로 뛰어난 장수일 줄이야.
그리고 고선지가 어째서 그렇게 추앙받는지도. 서양에서 한니발과 나폴레옹이 감행한 알프스 등정보다 훨씬 어려운 사막횡단과 이어진 파미르고원과 힌두쿠시 산맥의 돌파는 한두 명도 아닌 수만의 대군으로서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의 현시점에서도 중국서부와 중앙아시아의 혹독한 지형과 기후는 사람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지 않는다. 하물며 당시에서야 말할 나위도 없다. 이는 내가 잠시 체험한 실크로드 여행에서도 깊이 느꼈던 것이다. 또한 세계사적 대사건인 탈라스전투에서의 패배도 내부의 배반으로 인한 것이니, 전적으로 그에게 책임지울 수는 없다는 것을 이미 당나라 조정에서도 인식하여 처벌대신 승진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고선지가 2권의 이정기나 발해를 일으킨 대조영과 구별되어 한편으로 진한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그가 철저한 당나라 장군으로서의 일생을 살았다는 점이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서도 당나라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오늘날 중국인이 기리는 억울하게 죽은 10대 장군에 포함되는 연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한민족으로서 고구려인으로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