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과 제왕 2 - 중원의 고구려, 제왕 이정기
이덕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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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라는 인물이 역사의 망각을 헤치고 우리 시야에 들어온 것은 수년전 KBS 제1TV의 '역사스페셜'인 듯하다. 그후 주간조선(아니면 주간동아인가?)에서 특별기획으로 다루었던 기억도 있다.

고구려 부흥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일부 지배층이 발해를 건국하여 동만주와 연해주일대를 거점으로 세력을 떨쳤다. 반면 당나라 내부로 편입된 유민 대다수는 고선지 장군의 경우처럼 당나라 체제에 흡수되는 삶을 선택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정기의 경우는 독특하면서도 무한한 내적 감흥을 일깨우는 존재인 것이다.

당나라의 심장 한복판에 당나라에 저항세력의 일대 핵심이 자리잡았다는 사실과 그것이 고구려유민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객관성을 넘어 통쾌감을 금하지 못한다. 그것도 60여년간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당나라의 운수는 좀더 일찍 문을 닫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결국 천명임을 깨닫게 된다. 안록산의 눈병이 발병하지 않았더라면 일찌감치 당나라는 멸망하였을 것이고, 이정기가 오십도 안된 나이에 병사하지 않았다면 그후 중국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고구려 유민에 의한 당나라 전복과 중국 지배는 한국사와 중국사를 넘어 세계사를 다시 쓰는 엄청난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비단 이정기 뿐만이 아니라 그의 아들 이납도 요절하지 않았다면 치청왕국이 그렇게 빨리 쇠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당나라의 커다란 위협인물이 줄줄이 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당나라는 오늘내일하는 처지이면서도 질기디 질긴 명줄을 이어갈 수 있었다.

도대체 나이 일흔이 넘어서도 양귀비와 세기의 로맨스를 꽃필 줄 알았던 당나라 현종에 비해 웅대한 꿈을 안은채 천추의 한을 남긴채 세상을 뜬 이정기와 이납을 보면서 역사란 참으로 무정하다는 말을 되뇌게 된다. 조금만 더 좀만 더 하는 아쉬움이 크다.

삼대가 모두 인물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만약 이사도가 다른 번진세력의 몰락을 수수방관하지 않고 합종연횡을 통하여 세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치청왕국도 호락호락 정벌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록에서처럼 국부가 풍요로왔기 때문이다. 전국시대 진나라에 대항한 6개 국가의 연합으로 상당시간 팽팽한 국면이 전개되었다. 그 균형자의 역할을 이사도가 맡았다면...

이덕일이 장군 고선지와 제왕 이정기를 대비시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그가 누구를 치켜올리고 끌어내리는 목적을 가지지는 않았다고 본다. 그것은 고구려 패망이후의 고구려 유민들의 대칭적인 삶의 역정과 방향을 비추는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데서 알 수 있다. 고구려인에서 당나라인으로의 편입을 목적으로 당나라인으로 살아간 고선지도 자신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하였다. 반면 고구려인으로서의 자각을 갖고 또다른 고구려 왕국을 재건하고자 하였던 이정기도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치열하며 뜻깊은 인생항로였다.

나는 고선지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정기의 발자취를 좇을 것인가? 이 질문은 전시가 아닌 평시라고 해도 반추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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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1.5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