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 - 피아니즘의 황홀경 현대 예술의 거장
피터 F.오스왈드 지음, 한경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늦은밤 FM을 틀어놓고 잠을 청하던, 음악에 목말라하던 시절이 있었다. 진행자의 멘트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얽힌 사연이 소설처럼 전개되었고 이어 글렌 굴드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골드베르크를 굴드가 연주하다니 재밌군 하고 비몽사몽에서도 상념이 뇌리를 스친다.

그때부터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내가 정복해야할 거대한 산봉우리처럼 여겨졌다.90분짜리 테이프 한면에 다 수록이 되지못하는 50분이 넘는 연주시간. 그리고 굴드. 아직 CD가 대세를 이루지 못하던 시절, 나는 종로3가의 신나라레코드점에서 용돈을 아껴가며 LP를 몇장씩 구입하고는 했다. 전면 표지를 감사하고 후면의 해설을 탐독하고 앞뒤로 뒤집어가며 음악이 주는 순수한 기쁨에 몰입하던 때였다.

처음 구입한 것은 오로지 글렌 굴드라는 이름만으로 선택하였던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음반. 이윽고 나는 '굴드 신화'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톡톡 튀는 리듬과 역동성, 어디선가 들려오는 흥얼거림. 난 바흐 음악이 이다지도 재밌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더우기 우연히 라디오에서 녹음한 바흐의 피아노협주곡 연주-그것이 레닌그라드 실황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의 개성적인 독주와 절묘한 호흡을 맞추는 오케스트라의 균형감과 박진감. 이후 리스트편곡의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음반, 힌데미트의 피아노 소나타 음반, 거금을 투하한 평균율곡집 등 구입하는 매건마다 그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쉽게도 골드베르크는 찾지 못하였다.

군대생활을 할 때였다. 외출나와서 여느때처럼 음반가게를 거닐다가 갑자기 골드베르크가 떠올랐고 굴드가 기억에 살아왔다. 막 CD로 전향한 시점이기도 하였는데 마침 그것이 있었다. 이윽고 조심스레 듣는 그 영롱하면서도 장중하고 무한한 깊이를 지닌 아리아에 나는 매혹되었다.

그후 기회있을 때마다 굴드의 바흐 음반을 사들이곤 하였다. 프랑스모음곡, 영국모음곡, 레닌그라드 실황음반 등. 그러면서 굴드라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궁금하였다. 내지에 간단한 소개된 다분히 기인적 에피소드 말고, 진실로 그의 삶이 궁금하였다. 골드베르크로 데뷰하여 인생의 말미에 다시금 골드베르크로 돌아온 드라마틱한 역정이 아니었던가.

저자 오스왈드는 오랜 기간 글렌 굴드와 교분을 나누었던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였다'는 과거시제를 사용한 것은 만남이 단절되었다는 데서 연유하는데 굴드는 자신에게 이용가치(?)가 다하면 냉혹하게 절교하는 삶의 태도를 지닌 인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보며 알게 되었다. 유난히도 극성맞았던 그의 건강염려가 어릴적 어머니의 과도한 염려 탓인 점도. 연주회를 중단하고 순수한 음반에만 매진하였던 것도 대중앞에 나설때의 과도한 긴장을 이기지 못하였다는 점도 모두 새롭기 그지없다. 스승 게레로를 후에 무시하고 호로비츠에 대한 질투심을 이기지 못한 젊은 피아니스트에게는 연민조차 풍긴다.

그는 언제나 남과 다른 연주를 들려주고자 하였다. 그 다름이 작품에 내재한 아름다움을 이끌어낸 경우 각광을 받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수많은 비난에 직면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 자신도 아직까지는 그의 바흐에 몰두된 상태이다. 오늘날 바로크 음악은 원전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연주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비정통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를 옹호한다. 어쨌든 그를 통하여 바흐는 골치아픈, 접근이 어려운 서양음악사의 중요한 한 인물에서 친숙한 존재로 다가왔다. 악기의 차이를 통해서도 음악적 감동의 본질은 훼손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이 오십에 굴드는 세상을 떠났다. 한편으로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그의 메모에 수많은 녹음목록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연주가로서는 그렇지만 인간으로서의 개체적 측면에서 때맞추어 갔을 뿐이다. 고통받는 영혼과 육신의 몸으로서의 그를 솔직히 너무 괴롭히고 싶지는 않다. 그 점을 굴드도 인식하고 골드베르크의 재녹음을 감행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자신의 운명을 예지하고.

책장을 덮으면서 일말의 상념이 스친다. 또 열심히 굴드의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결의도. 비록 굴드는 갔지만 그의 유산은 적지않이 주위에 남아있다.

PS. 글렌 굴드의 성씨가 원래는 '골드'였다고 한다. 나중에 부친때 와서 개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만약 그대로였다면 진짜 '골드의 골드베르크'가 되는것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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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1.15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