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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기억 3 - 바람의 세기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박병규 옮김 / 따님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드디어 마지막 세번째 권 읽기를 마치다. 읽는이가 이렇게 숨막힐진대 저자는 어떤 심경으로 이 처절한 작품을 집필할 수 있었을지 감탄과 경이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권은 20세기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아우르고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제국주의에서 잇달아 독립을 쟁취하여 진정한 그들만의 역사를 개척해 나가는 장면에서 한가닥 희망을 엿본다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도 그들 민중의 삶에는 일말의 개선도 없다는 현실 앞에서 좌절과 허탈을 금치 못한다.
비록 독립을 하였지만 단지 지배층의 교체를 의미할 뿐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오히려 더욱 악랄하게 탄압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명과 뒤집는 쿠데타의 연속. 유럽은 물러났지만 이제 미국의 강력한 개입과 조종은 이름만 독립국일뿐 여전한 식민지와 다름없다.
만약 지금의 우리사회에서 언론과 방송이 군부의 쿠데타를 노골적으로 요구한다면 국민들의 반응과 태도는 어떤 양태를 보여줄 지 궁금하다. 그런데 그런 일이 남미에서 자연스러운 일상적 현상으로 비일비재하다. 볼리비아의 역사 150년에서 쿠데타만 150번 이상이라니 이건 어떤 정권도 평균적으로 1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슬프기 짝이 없다.
남미 지배층과 국민들이 과연 동일한 국가 이념을 공유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는 대량학살이 손쉽게 자행된다는 말인가. 식민역사의 오염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 이념은 모두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도구일 뿐이다. 무엇이 절대적으로 진리인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국민이 정당한 투표절차를 통해서 사회주의 이념을 채택하고 지지하였다면 그 대의를 존중하고 따르면 될 것이다. 어찌 타국에서 국민들의 선택을 집단적 어리석음이라고 낙인찍고 국가체제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인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차라리 외세와 손잡고 기대는 특권층은 이미 국민이기를 포기한 존재들이다.
21세기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찬반여론이 거세다. 분명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측면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세계질서를 유지하고 재편하기 위하여 무수한 폭력적이며 야만적인 비열하기 짝이 없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아직도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 쿠바가 단적인 예다. 단지 자신의 바로 앞에서 반대 체제가 들어섰다는 것 때문에 일체의 문호를 닫아걸고 국가를 전복하기 위하여 수십년을 공작해 왔다는 것. 카스트로의 쿠바가 미국을 공격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암울한 세계속에 가끔씩 한줄기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나 그 빛을 너무 약해서 오래가지 못하다가 20세기 말에 이르러서 구름이 점차 걷히고 있다. 오늘날 브릭스라고 일컬어지는 브라질을 포함하여 여러국가에서 독재체제가 무너지고 자유주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중남미에서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체제가 자리를 잡은 역사는 없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침략 이전 그들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았고 기억에서 삭제되도록 강요당하였다. 그리고 그후 그것은 주체의 역사가 아니라 억압과 피지배의 수난사였다. 이제 겨우 자신들의 진정한 역사를 꾸려나갈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루바삐 안정된 사회체제를 구축하여 앞으로 다시는 어두운 과거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희망할 뿐이다. 그것이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고 그들보다 몇발짝 앞서나간 이웃의 소박한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