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인생 - 2002 제2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정미경이라는 작가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실 대상 작품은 내게 그다지 인상깊게 다가오지는 못하였다. 평론가들의 다각적인 분석과 칭찬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작가의 이력을 보니 한번 주요 작품을 이 기회에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어 집어든 게 바로 이 책이다.

네이버에서 '장밋빛 인생'을 탁 조회해 보니 화면 가득 정보가 쏟아진다. 이렇게 성가가 높던 작품이었나하는 순간이 무색하게, 엉뚱하게도 다른 '장미빛 인생'이었다. 바로 최진실을 재기시켰던 바로 그 텔레비전 드라마.

1987년에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재야(?)에서 잠적하다가 2001년 재데뷔한 후 바로 그 다음해에 이 소설로 문학상을 거머쥐었으니, 특이한 이력이다. 무협지로 치면 폐관수련한 후 급속한 내공의 상승을 얻었다는 것일까.

여성작가의 주인공은 으레 여자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처음부터 빗나가 버렸다. 광고회사의 잘나가는 중견 남자직원이 주인공. 게다가 때론 당혹스러울 정도로 성표현이 직설적이다. 이제는 여성작가라고 꼬리표를 붙이는 일도 그만두어야겠군.

현실의 광고업계가 이러할까 싶게 소설의 소재와 배경으로 등장하는 광고계에 대한 묘사는 매우 현장감이 넘친다. 하긴 이러니까 심사위원들이 모두 전직 광고업계 출신 작가라고 오판할 수밖에. 사용된 어휘 하나하나가 속칭 업계의 깊숙한 체험과 내막을 담고 있어 섯부른 자세로 덤벼든 게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광고업계의 신화적 존재인 '나'가 부도덕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민'의 죽음 후 일상과 회상이 맞물려 가는 구조 속에 '이강호'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삶과 죽음, 광고의 존재론적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라고 쓰면 과장법이 심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현대문명의 총아인 미디어를 활용한 광고의 위력이 막강하다는 반증이다. 티비광고, 신문광고, 지하철광고판, 옥외광고 등 눈뜨고 다시 눈감기까지 일상의 모든 시간과 장소는 광고에 둘러싸여 있고 광고없이는 숨쉴 수조차 없게 되었다.

이제 광고는 단순히 상품을 팔기 위한 도구적 목적을 초월하여 자체로서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고 우리들은 광고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광고, 멋진 광고에 열광하고 공익광고에 가슴 뭉클해 하는 현실 아니던가.

'나'와 좋은 관계를 지속했던 '민'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이유는 명확히 나와있지 않다. 공식발표대로 단순한 사고사일 수도 있게고, 아니면 '민'의 남편이 말한 대로 '임신'의 충격 내지 공포('민'의 남편은 불임이므로), 또는 표피적인 '나'와의 관계에 대한 절망일지 모른다.

'나'는 다수를 설득하는데는 전문가이지만, 아내와는 완전한 의사 불소통을 겪고 있으며, 그래도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민'과도 진실로 소통이 이루어졌는지 역시 회의적이다.

이 점에 '이강호'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삶의 지속성에 대한 확신이 없는 그에게 타인과의 관계 형성 및 유지보다는 자신의 장밋빛 꿈을 실현하고 그 이미지에서 영광을 누리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보다 소시적의 '나'의 자화상이다.

소설 중에서 '이강호'가 훨씬 선배인 '나'보다도 더 인생의 깊이를 체득한 듯하였음이 이채롭다. 그래, 인생이란 장밋빛으로만 꾸며지지 않는다. 회색이나 검은색, 다양한 색조가 어울려야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는 것처럼 인생도 그러한 법. '나'는 너무나 장밋빛 만을 갈구하고 있구나 싶다. 아니 그건 '나'만의 문제점이 아니라 모든 현대인들의 '나'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2002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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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4.19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