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역주 천예록 - 조선시대 민간에 떠도는 기이한 이야기
임방 지음, 정환국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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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조선시대 고고한 선비들도 사적인 순간에는 허리띠를 풀어놓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지닌 듯 하다. 그러기에 임방 같은 당대의 대신이 이와 같은 저작을 남겨놓았던 것이 아닐까싶다. 요즘으로 치면 순수문학을 하던 이가 대중문학작품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는 비교가 어떨런지. 이름도 낯선 <천예록>을 접하게 된 기회는 역시 하늘의 뜻이다. 내 무슨 수로 이와같은 고전을 알기나 하였을 것인가.

21세기의 우리 현대인도 마음 한구석에 귀신과 혼령, 이무기와 구미호의 상념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무더위가 시작되면 납량특집이라 하여 각종 공포영화와 '전설의 고향'류가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마구 쏟아지는 현실이다. 모두들 꾸며낸 이야기로라고 치부해 버리지만 섬뜩한 기운에 오싹 몸을 떨기도 한다. 한밤중에 폐가와 흉가, 무덤에 가는 것을 극히 꺼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임방은 17~18세기를 살면서 당시에 전해지던 각종 신기한 이야기를 유형별로 분류하여 두 편씩 기록하고 말미에 자신의 평을 덧붙이고 있다. 주로 임란과 병란 이후의 시기인지라 전란을 겪고난 민초들의 참담과 곤궁한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임방은 정통 사대부 입장에서 신뢰성 여부를 평가하여 허황한 점은 날카롭게 지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신이한 현상에 대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점이 이채롭다.

잘만 다듬으면 소위 판타지 문학이나 컴퓨터게임 등의 좋은 소재로 쓰일만한 내용이 한가득하다. 신선, 혼령, 귀신, 요물 등의 비현실성을 제외하더라도 여전히 그럴듯한 단편들이 많은데, 유생과 기녀와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이야기가 여운이 남는다. '눈을 쓸다가 옥소선을 엿보다'가 바로 그러하다. 마치 춘향전을 연상시키는 애처로움과 질긴 사랑의 연줄이 가슴에 파고든다.

이런한 종류의 설화 민담집은 몇 편을 제외하고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게 많다고 한다. 기껏해야 <어유야담>이나 <고금소총> 외에 귓가에 스친 편명이 무엇인던가. 인간이 이성과 오성의 지배를 받는다고 많은 철학자들이 강변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민초들의 상식과 이성을 뛰어넘은 존재를 마음에 품고 산다. 그것이 낮게는 귀신, 요물이며 높게는 하느님과 부처님 등의 신성한 존재인 것이다. 이성은 머리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감성은 가슴을 후벼파서 길이 흔적을 새긴다. 그리고 때로는 허황한 듯한 이야기조차 그것이 생성되고 유포되는 과정에서 당대인들의 마음의 편린이나마 반추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의 고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비하여 아직 우리의 고전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높지 않은편이다. 우선적으로는 아직도 잠자고 있는 많은 우리 고전들을 발굴하고 일반인들이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문의 굴레를 벗겨 맛깔스런 우리말로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익숙하면서 우리 건국신화는 왜 이리 낯설게 되었을까?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 전질을 독파하여 로마 인명과 문화에는 바로 최근의 것처럼 통달하면서 왜 조선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천년 수만리의 고리타분한 옛적 것으로 변모하고 마는가. 홀연 모든이의 기호가 일거에 변화하지는 않을 터이니 답답함을 하소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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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8.8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