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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자서전 - 뮈토스의 세계에서 질박한 한국인을 만나다
김열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네의 전통적인 삶과 정신을 돌아본다]
일개인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삶의 역정을 밟는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스치는 과거의 흔적들을 자서전이라는 기록물 형태로 남긴다. 개개인의 인생 행로는 환경과 선택에 의하여 다양한 굴곡을 겪는다. 그러기에 개인사는 책 한두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하지 않던가.
자서전이 어디 개인에 국한하랴. 제각각인 삶도 개인의 집합체인 민족 단위에서 바라볼때 일정한 틀을 가지고 대체적으로 평균적인 형태를 유지하는 정규분포에 수렴된다. 그러기에 타민족과 구별되는 고유성을 지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한국인은 어떠한 삶의 역정을 따르는지 역시 탄생에서 죽음까지 그 길을 추적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서 저자는 보다 전통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많이 조명한다. 그것은 저자가 민속학을 전공한 이력에서 찾을 수 있다.
책은 크게 7부로 대별된다. (탄생에 앞서 선존하는) 어머니, 탄생, 자라고 크고, 사랑, 결혼, 세상살이, 죽음 이렇게 소제목만 일별해도 대강의 흐름이 짐작된다.
흘러간 과거는 아름답다고 흔히들 주절거린다. 옛적의 아픈 상처와 체험도 시간의 작용으로 아련해지고 어느덧 환한 웃음으로 회상하게 된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점이 이렇게 편리한 법.
하지만 삶이 결코 즐겁고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러기에 저자는 우리네 삶을 맵고 짭다는 의미에서 맵짠 인생이라고 표현한다. 땀범벅인 짠지 인생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여기에는 장미빛으로 채색된 그런 환상을 없는 것이다.
저자가 파고드는 소재는 우리민족의 신화와 전설, 민담 등이다. 물어머니와 산어머니의 존재, 그리고 웅녀의 슬픔에서 시작하여 혼불과 오구굿판에 이르는 다종다기한 설화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그리 풍부했던가 새삼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고단한 인생살이를 연상하면 자꾸만 우리네 어머니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그만큼 과거 여성의 생은 '한'으로 점철되었던 탓일까. 저자가 페미니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런 측면에서 극히 자연스레 나타난다.
'신방에 앉은채 돌이 된 신부'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한맺혀서 죽어도 죽지 못하는 그런 아픔을 짠하게 보여준다. 그 가슴속 슬픔이 얼마나 크고 아팠던 것인지. 일제시대와 빨치산을 배경으로 한 '아비와 자식의 핏줄을 잘라 낸 이야기'는 또 천륜마저 무너질 수 밖에 없던 우리의 굴곡깊은 역사가 새삼 상처가 된다.
그럼에도 "생명은 그만큼 무서운 것, 늠렬한 것! 옷깃 여미고 또 여미고, 간수하고 다듬어야 하는 것!"을 '상복 입은 산모'는 침묵 속에 절규한다. 그리고 "죽음은 단지 소멸이 아니다. 미완의 삶을 억척같이 완성하는 자가 다름 아닌 죽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죽음의 꿈'에서는 알려준다. 이렇게 인생은 삶 곁에 죽음을 동반하고, 죽음과 삶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어우러지는 연극이기도 하다. 이 무대 한복판에서 각자가 맵짠 삶을 꾸려 나가며 개인의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며 동시에 한국인의 자서전도 그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