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성석제 지음, 김경호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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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음식 자체만의 맛은 아니다]

음식에 관한 산문집이다. 음식을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음식에 얽힌 추억, 회상, 그리움 등 음식과 사람사이에 대한 아스라한 정서를 정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 그때는 그런게 있었어 하는 동감과 아울러 이런 음식도 있네! 한번 맛보고 싶다는 자극을 준다.

전체적으로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별한 구성 기준은 따로 없는듯 하다. 대체로 요란스럽고 값비싼 요리보다는 소박한 우리네 밥상, 먹을거리를 많이 언급한다. 저자 자신이 말했듯이 경상북도 내륙 깊숙한 곳에서 태어나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탓도 있을테지만, 아직은 소박한 정서를 잃지 않은 연유가 크게 느껴진다. 도시생활에 젖어도 세월에 물들어도 마음 한구석 따뜻함을 지켜내는 저력은 세파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소시민과는 또다른 차원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8월 중순경. 나는 뜻밖에 입병으로 한창 고생을 겪었다. 피곤할때 종종 입안에 나는 것과 같은게 입안과 혀, 입천장을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시간이 경과하자 잇몸까지 부어서 치아가 흔들거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여태 살면서 이런 당혹스러움은 처음이다. 게다가 그때 마침 휴가를 내서 부산의 장인 생신에 참석하게끔 되어 있었다. 결국 처가식구들의 걱정만 잔뜩 안겨드린채 미역국과 콩나물국(희한하게 물 외에는 어떤 것도 입안을 자극하여 먹기 곤란하였는데, 이 두가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사실!) 만을 먹으며 며칠을 보냈다. 이비인후과에 가보았는데, 소염제나 처방할 뿐 원인은 오리무중. 단지 피곤이 누적된게 아니냐는 의견이었지만, 내 생각에는 며칠전에 먹은 킹크랩에 아무래도 몸이 탈난듯하다. 팔자에 없는 킹크랩을 먹어보겠다고 와싸다닷컴에서 열심히 이벤트에 참여하여 우리집 식구들이 킹크랩 파티를 벌였다. 이때 딱딱한 킹크랩 껍질과 다리를 발라먹는 과정에서 자극을 받은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멀쩡한데 나만 그런 이유는? 글쎄, 아무래도 내가 그다지 킹크랩이니 게를 평소에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게와 나의 궁합에 연관이 있을거라는 억지스러운 추측뿐.

물경 이주일이나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면 조금이나마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이후 매운 음식에 대하여 입이 매우 민감하게 변해버렸다. 남들은 딱 좋을 정도로 매콤함이 내게는 입안을 얼얼하게 자극시키고 있으니. 이러다 영영 매운 음식을 못먹는게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와같이 음식도 제대로 먹지못하는 가운데 음식에 관한 글을 읽게 되는 그 심정은 얼마나 절절할지 상상하기 어렵다. 김밥, 닭개장, 냉면, 국시, 부대찌개 등 절로 군침이 돌게 마련이다. 평소 좋아했건 아니건 절실한 상황에서 개개의 음식 이름은 새로운 존재감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그때는 무슨 음식을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는 회한과 다짐뿐.

이제 입병도 99.9% 치료되었다. 몇 주가 경과하였는데 그때 그 다짐은 지금은 유효하지 않다. 사람 살아가면서 날마다 특별한 음식을 먹는이가 몇이나 될까. 평범한 밥상을 눈앞에 놓아두고 그저 천하진미려니 하며 수저를 드는게 우리네 일상. 무슨 음식을 먹었냐는 사실보다는 누구와 함께 어떤 순간에 식사를 하였는지가 우리네 추억에 더깊이 각인된다. 마음이 불편하면 산해진미도 그저 화장실에 가도록 만드는 원인제공자에 지나지 않는다. 어서 빨리 식사가 끝났으면 하고 수없이 속으로 되뇌이는 순간을 나는 몇번 가져본 적 있다. 그때는 값비싼 요리도 밥 한그릇과 김치 한 접시에 미치지 못한다.

성석제가 이 책에서 그리고자 하는 것도 결국은 그런 것이다. 낯선 지역에서 우연히 맛본 음식, 너무나도 기억에 남아서 훗날 물어물어 다시 그 곳을 찾아가 본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듯이 그 자리에 식당은 의연하건만 왠일인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맛은 음식 자체에서만 배어나오는게 아니다. 음식과 음식점 분위기, 음식적 아주머니, 식당이 자리잡은 배경과 그 순간 나의 상태, 동반자와의 관계 등이 어울려져야 천하일미를 추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발생한다. 역시 사람이 먹고 산다는게 단순해 보이면서도 그렇지 않은게 음식마저도 하나의 좋합예술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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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9.1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