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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언젠가 제목을 보고 그로테스크함에 이끌려 꼭 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애초 기대와는 다른 낯섬에 다소간 당혹감을 느끼면서 읽어나갔다.
1. 대화체의 전개방식. 첫장면부터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끝까지 이어진다. 대화 형식으로만 구성된 장편소설이 더 있었던가 반추해봐도 모르겠다. 하여튼 형식의 독특함에서 일단 독자의 관싱을 끄는데는 성공한 셈.
2. 영화 스토리의 삽입. 소설 진행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오로지 사건전개는 영화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할 정도로. 그리고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들려주는 영화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한 함축을 지니며 소설의 심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몰리나가 발렌틴을 시밀적, 육체적으로 유혹하려는 의도를 지니는 동시에 막다른 처지에 놓인 외로운 사람간의 진정한 교감을 주고받는 수단이기도 하다.
3. 동성애의 소재. 소설에서 이렇듯이 동성애가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를 처음 접한다. 그럼에도 관대한 평가를 받으니 확실히 우리 사회가 많이 개방되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자칫 혐오스러울 수 있는 장면에서도 순수하고 솔직함이 신비적 탐미감을 불러일으킴은 작가의 뛰어난 역량이리라.
4. 장대한 각주. 음, 소설 속에 이리 난해하고 기나긴 각주를 만나기도 또한 처음이다. 처음엔 이게 뭔가 당혹스러운 가운데 동성애와 관련한 심리학상 견해를 상술한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각주가 꼭 필요했을까는 여전히 의문시된다.
이 작품의 탁월함은 저급하게 평가되는 대중영화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그 극적 효과를 발휘케 하였다는데 있다고 한다. 동성애 소재는 충격적이지만 그 자체로 문학적 평가에 부정적 영향은 없는 듯.
이 소설이 발표된게 1976년, 이제 30년이 경과하였다. 상전벽하라던가, 천대받던 영화는 이제 문화산업의 중추로 자리잡고 각계의 열렬한 주목을 한손에 휘어잡고 있다. 오히려 순수문학이 연약한 생명력을 간신히 유지하는 형국. 대중영화의 소설 도입의 공은 문학사적 가치로 국한시켜도 충분하다고 할 때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혁명가와 미성년자추행범인 동성애자가 서서히 교감을 주고받아 사회적 터부를 깨뜨리고 진실한 사랑에 이르렀다는 점에 높은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까. 확실히 작품 기술 측면에 있어서는 탁월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 일반의 도덕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할 때 여전히 우리는 높이 평가해야 하는가.
동성애는 뜨거운 감자다. 서구 일각에서는 조금씩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다른 차원이다.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 새 생명의 탄생과 인류 생존의 기본 관계라면 동성간의 결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소설은 문학보다는 가치판단의 차원에서 논의가 요구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