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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평점 :
<인생수업>, 이 책은 다소 관심이 있었지만 구입 자체는 망설이고 있었다. 표제에서 풍기듯 이런 유형의 저작물은 대체로 소개하고 주장하는 바가 비슷하다는 경험 내지 추정때문에. 나중에 학교 도서관에서 한번 빌려보면 충분하다는 현실적 생각도 한몫한 듯. 하지만 1+1이라고 헤르만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도 같이 준다고 하여 그만 덜컥 구입하고 말았다.
사실 이 책을 읽은지는 조금 시일이 된다. 순서대로 한다면야 <한국열국사연구>에 선행해야 하나 다소간 사정으로 이제야 몇자 끄적거린다.
저자 자신이 죽음을 앞두고 쓴 책이라서 깨달음의 경지를 얻은 듯 담담한 어조로 글은 이어진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라고 하니 저자와 죽음의 관계는 오랜 동반의 공유하고 있다면 어폐일까? 처음에는 임종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최후의 순간에 깨달은 바를 독백 형태로 서술하는 형식인 줄 알았는데, 사례를 토대로 한 저자들의 서술이 잘 정리되어 개개 항목으로 나뉘어 있다.
유사한 교훈을 담은 저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번역자 류시화 시인의 브랜드 네임이 크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고야 일대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는..하고 꼬리표가 달리기 십상이다.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가장 솔직하고 현명해진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의 생애는 수많은 잘못과 시행착오와 오해, 갈등이 첩첩이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삶의 종착점에 이르렀을 때라야 삶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266면)"는 것이다. 더이상 가질 필요가 없을때 의식은 투명하게 빛나고 삶의 반추는 때늦은 후회감으로 들먹이게 된다.
한번 쯤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대단히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무리 좋더라도 '나 아닌 남'의 것에는 별로 감흥을 못 느끼기 마련이다. 게다가 세상에는 이러저러하게 살아야 한다는 무수한 도덕적 종교적 철학적 메시지가 난무한다. 어지간한 이라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그럼에도 세상이 보다 도덕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니 인간의 영원한 숙제이자 굴레이다.
얼마전 이 책의 표절이 지상에 오르내렸다. 표지와 본문에 사용된 삽화의 외국 원저자가 사용허락을 하지 않자 출판사에서 표절하여 실었다는 내용이다. 양서에 나쁜 관행이 병존하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사실 삽화가 꽤 분위기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 점 하나만 보더라도 책밖과 책속 세계의 괴리가 확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