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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미스터 칩스 ㅣ 에버그린북스 6
제임스 힐튼 지음, 김기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한 노교사의 삶을 통해 진정한 교육의 가치와 견해, 그리고 교육자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이 작품의 정조(情調)는 대체로 회고조의 애상미가 전편에 은은히 넘쳐난다. 그 독특한 조용히 곱씹는 듯한 문체와 나직한 어조, 질박한 표현은 고지식하고 구태세적이며 촌스럽기조차 한 칩스 노교사의 은근한 삶을 조명하는데 과부족 함이 없다.
솔직히 그렇게 기대하고 읽은 작품은 아닌데 뜻하지 아니한 감동은 배가 되는 법인가. 눌변의 능변, 무기교의 기교라는 찬사는 우리 고전미에 대한 찬미에만 쓰는 어구는 아니리라. 호손의 <큰 바위 얼굴>과 주제 정신에서는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과욕을 삼가고 일상에 충실하는 주인공의 공통적 미덕이 한층 크게 우러러보이게 한다.
칩스는 빅토리아 여왕 시기의 대영제국의 문화적 배경을 살아간 인물이다. 그에게서는 우아하고 화려하지만 최전성기에서 서서히 쇠잔의 기미가 엿보이는 장중한 서글픔이 문득 배어있다.
칩스의 삶에서 변모의 계기는 캐서린과의 만남과 짧았지만 행복했던 결혼 생활이었다. 그녀의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사고와 태도는 온건한 보수주의자인 칩스를 바꿔놓았다. 결혼 전 무미건조한 어느 정도 존경받을만한 교사에서 생기가 감돌고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자로 극적인 변화를 보이게 된다. 교사가 학생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만큼이나, 인생의 반려자가 배우자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좋은 교사 못지않게 훌륭한 배필과의 만남도 중요하다.
캐서린과의 사별 후 칩스는 다시 외견상 고리타분한 노인네가 되었지만, 더 이상 과거의 칩스가 아니었다. 그녀로 말미암아 그의 내면은 깊이 있는 ‘지대하고도 완전무결한 자기 완성’(P.62)에 이르게 되었다.
그것은 후임 교장 랠스턴과의 언쟁에서 명확해진다. 그가 진정 중시하는 것은 ‘시험을 치르고 증서를 수여하는 것으로는 테스트 할 수 없는 균형잡힌 중용의 사고를 배양’(P.82)하는 데 있다.
이는 칩스는 물론 작가 자신의 바램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세계는 여전히 불길하고 어두운 전쟁의 전조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인생의 가치와 방향을 상실하였다. 이것이 문학상 소위 ‘길잃은 세대’이다. 제임스 힐튼 역시 이들 세대의 일원이다. 그에게 당대는 고상한 전통의 미덕을 상실하고 균형을 잃은 채 제멋대로 비틀거리고 있다.
“중용의 도를 지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P.101)
그렇다면 작가가 찾고자 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노교사의 삶에서 잃어버린 옛 가치를 재발견하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욕심을 권하고 성공을 꿈꾸는 사회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변함없이 자기 사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미친 세상에서 점점 희귀해지는 위엄과 관용의 사상을.” (P.102)
칩스가 브룩필드 사람들에 존경받고 인기 있는 이유는 단순히 나이가 많기 때문은 아니다. 그의 농담은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것이다. 그는 삶에 진실하였고 그 안에서 성숙해졌다. 앞서 말했지만 캐서린이 그를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임스 힐튼은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동양 사상을 통해 서구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제 그가 재발견한 것은 비물질적 가치, 즉 칩스의 사상으로 대변되는 과거 서구의 뛰어난 전통적인 정신적 가치에 대한 재인식이다. 이는 한낱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다. 현재와 미래의 인간 세상을 더 근사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부족하므로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치다.
이 작품은 짤막한 중편이지만 깊이에 있어서는 대하소설을 능가한다. 그 점에서 의미를 반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