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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ㅣ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세계문학사 작은사전>(김희보 편저)에 따르면, 이 작품은 “아편의 꿈의 공포를 묘사한 화려한 문장으로 낭만주의자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켰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표현상 문체의 화려함이 두드러지며, 여기에 내용상 아편 중독의 증상이 주는 호기심 충족이 덧붙여진다.
기실 이 작품에 무슨 교훈적 의미를 찾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비록 작가 본인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에 이 측면을 중시하지만.
“나는 이 글이 단순히 흥미로운 기록에만 머물지 않고 상당히 유익하고 교훈적인 글도 되리라고 믿는다. 내가 이 글을 쓴 것도 바로 그런 소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P.9)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 독자들의 관심이 맴도는 진짜 중심은 아편쟁이가 아니라 아편이다. 이 이야기의 목적은 쾌락을 가져오든 고통을 가져오든, 아편의 불가사의한 작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목적이 달성되면 이 글의 역할도 끝난 것이다.” (P.164)
전 2부로 구성된 작품에서 제1부는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회고담이다. 가출 이후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며 방랑하던 소년 시절, 이로 인하여 후일 육체적 질병의 계기가 되었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아편 복용이 단순히 쾌락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음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흥미로움과 지루함의 반응이 모두 가능하다.
제2부는 본격적으로 아편의 쾌락과 고통을 다룬다. 일단 당시는 아편이 금지약물이 아니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늘날의 마약과는 입장이 다르다. 누구나 약국에서 약을 사듯이 아편을 구입하여 복용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일단 아편의 기능을 소개하면서 이를 포도주에 비교한다. 그에 따르면 아편이 복용자에게 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한다. 게다가 “어떤 분량의 아편도 중독을 일으키지 않으며, 일으킬 수도 없다.”(P.89)고 단언한다.
그의 아편 찬미는 한없다.
“그대는 낙원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오, 공정하고, 교묘하고, 강력한 아편이여!” (P.106)
이러한 예찬은 곧이어 고통의 체험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제 작별이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행복과도 오랫동안 작별이다! 미소와도 웃음과도 작별이다! 마음의 평화와도 작별이다! 희망과도 평온한 꿈과도 축복받은 잠의 위안과도 작별이다!” (P.130)
아편과 같은 약물 중독을 다룬 이 책은 내게 전에 읽었던 책을 상기시킨다. <해시시 클럽>에서 네르발, 고티에, 보들레르 같은 이들은 나름 약물의 효과에 대하여 긍정적, 부정적 글을 쓰고 있다. 나아가 네르발의 <실비>와 <오렐리아>는 정신착란에 의한 것이므로 약물과는 다소 다르지만, 환상과 몽상을 담고 있는 점에서 기본 정신은 유사하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과 호수와 넓게 펼쳐진 은빛 수면의 꿈에서 오렐리아를 연상시킨다. 드 퀸시는 네르발의 선구자인가? 아니다. 네르발에서는 현실과 환상이 화학적으로 융합되어 진실로 초현실주의라고 할 만하지만, 드 퀸시는 현실과 꿈이 날카롭게 대립되어 이것이 작가의 정신에 혼란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드 퀸시는 왜 이렇게 적나라하게 자신을 고백하고 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은 소리 내어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내 기분에 따르는 것이다...나 자신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모든 역사의 기록을 갖고 싶어서, 내가 지금 쏟을 수 있는 노력을 모두 기울여 최대한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P.133)
작가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아편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당대인들에게는 미지와 금지의 약물인 아편의 효과가 어떠한지 드 퀸시의 글을 통해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우리들은 더 이상 아편의 효과에 별로 관심 없다. 오히려 아편쟁이로서 드 퀸시의 개인사가 궁금할 따름이다.
드 퀸시가 아편쟁이의 삶을 얼마나 화려한 문장으로 고백하고 있는 지 알 수 없다. 다만 후대 작가들에게 인간 내면의 무의식적인 환상과 꿈을 양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자못 기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보들레르가 남긴 말이 드 퀸시에 대한 진정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아편쟁이가 인류에게 실제적인 봉사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도대체 어쨌단 말인가. 그의 책이 ‘아름답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P.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