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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진실 - 상 ㅣ 즐거운 지식 49
김준봉 지음 / 이담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한국전쟁에 관한 국내 주요 저작은 대체로 원인론에 치우쳐 있다. 원인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논란이 치열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으로 브루스 커밍스의 기념비적 저작의 영향도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원인에 관한 논쟁은 일단락되었으므로 그동안 소외되었던 전쟁의 다른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전쟁의 전개과정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은 편이다. 한국전쟁은 기습 남침과 낙동강 방어선, 인천상륙작전과 일사후퇴 그리고 휴전협정의 단순한 전개만이 아니다. 도대체 3년 동안 전쟁이 어떤 국면과 전환을 거듭했는지 아는 이도 적고 알려주지도 않는다. 전쟁은 원인과 결과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생명이 사선을 넘나들고 엄청난 물자가 소진되는 현장이다. 전쟁의 전개와 전투에 대해서는 전쟁사가 또는 군사(軍史)의 몫이라고 방치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상기 목적에 부합하는 유형의 저작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직업군인 출신으로 사단장 즉, 소장까지 지냈으면서 육군대학 총장 등 학계에도 오랫동안 몸 담았다. 군 출신답게 시각은 보수적이며, 북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이승만과 김일성에 대한 평가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과장해서 말하면 이승만은 유능하고 탁월한 정치력과 외교력으로 전대미문의 위기를 잘 넘긴 정치인인 반면, 김일성은 외세의 도움으로 권력을 손아귀에 쥔 억세게 운 좋은 순전히 무뢰한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전쟁의 원인에 대한 지리한 논의를 하지 않아 마음에 든다. 서술방식은 사실 중심적이며 사실의 나열 속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설적으로 전쟁 흐름을 파악해간다. 비록 그의 시각과 필치가 마음에 쏙 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론이 아닌 전쟁의 실제 전개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려줄 것으로 기대한다.
전쟁 초반의 파죽지세로 밀린 전세를 저자는 병력 운용의 기본개념이 부족하였던 것으로 이해한다. 역으로 말하면 조금만 평시 대비를 잘했다면 충분히 강력한 저항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군의 초전에서 가장 큰 과오는 군사력 운용에 대한 기본계획 내지는 기본개념이 없었던 것에 연유하였다고 본다. 후방지역에 있던 예비사단인 2, 3, 5사단을 김홍일 소장이 제안한 한강선 방어에 투입하였거나 한강대교 폭파를 전방사단 철수 이후로 조정하였다면 초기 전투에 그렇게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P.59)
일반국민은 물론 전체 병력의 절반이 한강 이북에 있었는데도 지레 겁먹고 한강교량을 끊어서 제풀에 역량을 상실하였으니 자해행위를 한 셈이다. 이것이 북진통일을 구호로 삼은 당대 정권과 군대의 실상이다.
한국전쟁에서 맥아더의 명성은 드높아서 인천 월미도에 그의 동상이 오래전부터 세워져 있다. 반면 전장에서 목숨을 바친 야전 총사령관 워커 중장에 대해서는 그의 공적이 너무나 무시되고 있다. 워커의 명확한 전세 판단 및 불굴의 전투의지와 노력이 없었다면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구상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며 진작에 한반도는 북한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졌을 것은 불문가지다.
“우리는 공간을 내주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감제고지는 가능한 한 오래 확보해야 한다. 방어는 종심 깊게 해야 한다. 예비대는 반드시 확보해야 측방경계를 소홀히 하지 말고 포병을 보호해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통신과 병참선을 견고하게 지켜야 한다. 결전을 피하라.” (P.113)
워커 자신의 말이다.
한국전쟁에서 맥아더의 가장 큰 실책은 중공군의 개입가능성을 외면하고 맹렬한 북진을 지휘한 데 있다. 하지만 사실 전장의 워커를 개인적 편견으로 불신하고 충분한 지원을 제공해 주지 않았으며, 종국에는 지휘권을 분할한 것이 더 크다. 자신이 문제를 자초해 놓고 책임을 워커에게 묻고 있으니 워커의 입장에서는 손과 발을 다 묶어 놓고 재주부리라는 격이니 어처구니없을 것이다.
“8군을 지원해야 할 위치의 참모장이 8군과 경쟁체제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탄약, 도하장비 등 보급의 우선권을 자신이 지휘하는 10군단에 두었을 것임은 더 논할 필요도 없다.” (P.256)
전쟁에서 후세에 기억되는 것은 전투에서의 커다란 승리다. 임진왜란 하면 육전에서 진주성 전투, 행주대첩 등이 떠오르며, 해전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위업이 두드러진다. 한국전쟁에서도 어찌 일방적으로 패전만 했겠는가? 비록 초전에서는 대세가 불리하였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겨야 할 승전의 소식을 빼먹으면 안 될 것이다. 1950년 7월 17일부터 일주일간 국군 17연대가 벌인 화령장 전투와, 8월 중순 1사단의 다부동 전투가 그것이다.
낙동강 방어선의 사수로 맥아더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유명한 인천상륙작전을 이루어냈다. 책을 통해 당시 미국 정부와 워커 사령관은 상륙작전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장소는 인천보다 군산의 전략적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실 인천이나 군산 모두 선택만 하면 성공가능성은 높은 편이었다. 미군이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군사적으로는 군산이 타당하다. 상륙작전은 상륙 자체에 목적이 아니라 이후 협공을 통해 적군을 무력화 내지 궤멸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인천보다는 군산이 워커의 8군과 협력을 통해 일대 공세로 전환하기에 용이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맥아더는 정치적 상징성을 중시하였다. 인천을 통해 서울을 점령한다면 그것이 갖는 심리적 효과는 심대할 것이다. 게다가 수도 탈환이라는 상징성도 매우 크다. 만약이라는 가정이지만, 군산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면 이후 전쟁의 흐름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매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