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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로 출세기. 사기꾼 - 예문소설 2
께베도 외 지음 / 예문 / 1989년 1월
평점 :
절판
두 편의 스페인 피카레스크 소설 대표작을 수록하고 있다. 1989년 출간되어 현재는 완전히 절판된 상태로 중고 외에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수많은 책들이 절판되는 마당에 이 책이 그렇다고 하여 특별히 아쉬울 것은 없지만, 후자 <사기꾼>은 국내 유일의 번역본이라는 점을 유념하자. 한편 두 작품 모두 스페인어 원전 번역이 아니라 영문판의 중역이다. 처음 출판시기를 보면 중역이라도 출판된 것 자체가 기적이다.
<라자로 출세기>는 국내 번역본이 그나마 몇 편 있다. 당장 도서명을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으로 조회해 보면 최신 출간본을 구할 수 있다. 앞서 이 작품에 대한 단상을 기록한 적이 있으므로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당시는 피카레스크 소설을 처음 접하기에 어느 정도 표피적 상념에 치중한 감이 든다. 재독을 해보니 간과한 대목이 심상하지 않게 다가온다. 가볍지만 경박하지 않으며, 단순하지만 속 깊은 작품인데도.
<사기꾼>은 피카레스크 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작가 프란시스코 데 께베도 이 비예가스는 스페인 황금세기의 시인으로 세르반테스의 후배격이다. 확실히 전자와 비하면 더 잘 짜여 있어 소설적 완성도가 높음을 대번에 알게 된다.
<사기꾼>의 정식 명칭은 <방랑아의 본보기 악당의 거울, 돈 파블로스라고 불리는 사기꾼의 생애 이야기>라고 한다. 너무 길어서 통상 ‘사기꾼’ 또는 스페인어 그대로 ‘부스꼰’으로 약칭한다.
일단 주인공 파블로 역시 평범한 집안 출신이 아니다. 아버지는 도둑이고, 어머니는 마녀이며, 삼촌은 사형집행인이다. 파블로는 귀족 집안의 자제 돈 디에고를 따라 친구 겸 하인으로 나름 교육도 어느 정도 받은 인물이다. 라사리요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생계를 위해 팔려 다니는 신세였다는 점에서 파블로와는 대조된다. 파블로는 단순히 생계가 아니라 소위 출세를 위하여 스스로 피카로가 된다. 여기서 출세는 경제적 부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분까지도 의미한다. 그는 신분을 속이고 여관집 딸에게 구애하다가 어느 순간 귀족 여성을 유혹하려고 한다. 교묘한 말솜씨와 글재주로 전형적인 사기꾼 짓은 물론 사람마저도 죽인다. 라사리요가 고난을 당하는 입장이라면 파블로는 이를 감수하고 자초한다.
파블로가 처음부터 타락하지는 않는다. 그와 돈 디에고는 기숙학교에 보내졌는데 거의 아사 직전에 구출된다. 이어 돈 디에고의 유학길에 동행하는데, 처음부터 여관에서 세상사의 쓴 맛을 본다. 여관 주인의 작별 인사는 앞길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예언한다.
“젊은 나리, 아마 이런 일을 몇 번 더 겪으면 당신도 곧 어른이 될거요.” (P.126)
알칼라에 도착한 다음날 파블로는 거리의 건달들과 하인들에게 잇달아 낭패를 겪으며 절실히 깨닫는다. 그리고 남에게 당하지 않도록 더 한층 남을 못살게 구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제 피카로의 탄생이다.
이후 그의 삶은 악행으로 점철한다. 하숙집 가정부와 짜고 식료품 빼돌리기, 시중에서 물건 도둑질하기, 경찰서의 무기 뺏어오기 등등. 중요한 것은 이런 행위를 그는 즐긴다는 데 있다.
“정말로 그렇게 즐거운 일은 내 평생에 다시 없었던 것 같았다.” (P.144)
부모의 유산을 받으러 고향에 오는 도중 합류한 엉터리 노인 시인과의 에피소드(‘쓸모없고 어리석고 천치 같은 시인들에 대한 선언서’)는 작가 자신이 시인인 마당에서 세상의 무수한 얼치기 시인에 대한 고발이자 풍자이다.
그와 돈 토리비오의 마드리드 생활은 세르반테스의 세비야 건달 이야기의 확장판이다. 그만큼 도둑과 가짜 걸인, 사기꾼들의 생활방식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당대 음지 사회의 모습이 정밀하게 재현되어 있다. 바로 이런 것이 피카레스크 소설이 구름 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단단한 대지를 두 발로 굳건히 디딘 자들의 희로애락을 가감 없이 드러낸 측면에서 후대 문학에 큰 기여를 한 부분이다. 인간세상의 어둡고 감추고 싶은 참모습 말이다.
이 작품의 말미는 주인공의 반생에 대한 회고이자 남은 후생에의 출발이기도 하다. 그는 스페인을 떠나서 아메리카로 향한다. 자신을 쫓아다니는 불행과 체포에서 안전하기 위한 선택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훨씬 더 나빠졌다.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지 않고 자리만 바꾸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 그런 식의 전철을 밟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P.288)
이것이 마지막 대목이다. 어째 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1부가 종료되고 곧 2부가 시작될 것만 같다.
파블로의 캐릭터는 철저히 피카로적이다. 그는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삶에서 마주치거나 걸리적거리는 모든 사람을 속이고 등쳐먹는다. 세상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기엔 그의 사악한 심성은 너무 뿌리 깊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인가 아니면 의지의 주인이가? 해묵은 논쟁이다. 파블로의 사기꾼 행각은 찰나의 짜릿한 즐거움과 동시에 부메랑의 고통을 안겨주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어디 그가 제대로 성공한 적이 있던가? 항상 사기의 성공 직전에 실패하여 심신의 추락을 동반한다.
그나마 라사리요는 세상과 타협하고 정부 관리로서 출세하고 결혼도 하여 안정을 갖게 되지만, 여기의 파블로는 결코 안주하지 않는다. 그에게 삶은 끊임없는 대결과 사기의 장이다. 그의 두 발이 온전하고 숨을 쉴 수 있는 한 그는 멈출 수 없다. 왜? 그는 타고난 피카로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