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
A.V.토르쿠노프 지음, 구종서 옮김 / 에디터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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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전쟁에 관한 오랫동안의 연구는 주로 발발 원인과 개전 주체에 초점을 맞춰왔다. 많은 서적들에서 언급되었듯이 남침설과 북침설의 대립, 이어 남침유도설의 등장이 뒤따랐고 주체에 대해서는 김일성의 북한, 이승만의 남한, 모택동의 중국, 스탈린의 소련이 대두되었다. 심지어는 냉전시기 미국마저 언급되었을 정도니 이론과 가설이 난무하는 경연장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전쟁의 성격은 어떠한가? 내전설, 냉전 확대설, 음모설, 대리전쟁설 등이 춤추었다.

그런데 이제 연구자들은 더 이상은 여기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누가 왜 전쟁을 일으켰고, 누가 도움을 주었는지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그것은 냉전 시기 소련의 비밀문서들이 공개에 따른 결과였고, 이 책은 이를 입증하는 기념비적 저작이다. 이 책의 출간 이후로 한국전쟁의 연구 패러다임이 변화하였다.

이 책의 저자는 무슨 획기적인 주장을 펼쳐놓지 않는다. 전쟁 이전과 전쟁 도중에 김일성과 스탈린과 모택동 사이에 주고받은 핵심 기밀문서를 온전히 햇빛에 드러내는데 만족한다. 하지만 그 파급효과는 예상 이상으로 엄청나다.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주도적으로 발의하고 추진하였다. 그는 주저하고 망설이는 스탈린을 계속 설득하여 승인을 하도록 만든다. 스탈린은 유엔국으로서 공개적으로 전쟁을 지원할 수 없음을 구실삼아 모택동으로 하여금 북한을 돕도록 요구한다. 신생 공산주의 정부인 모택동은 자의반 타의반 소련의 지시를 이행할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의 지정학적 성격이 자국에 미치는 안보도 감안했을 터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이 책안에 들어있다. 그것도 편집을 거치지 않은 그들 자신의 육성으로, 전보의 형식으로 말이다.

전쟁 추진과 개전 초기의 성공기에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의존하였다. 그러다가 전황이 어렵게 되어 중국군이 참전하자 그 후 전쟁의 주도권은 모택동에게 넘어간다. 이것은 휴전 협상에서도 계속되어 김일성은 단지 들러리에 불과할 뿐 모든 것은 모택동이 판단하고 스탈린의 동의를 구하여 추진되었다.

삼국 사이의 관계가 항상 원만하지는 않았다. 김일성은 처음에 의도적으로 중국을 무시하고 모스크바만 거래하였다. 중국은 이 점에 매우 심기가 불편하였고, 스탈린은 둘 사이를 수습하는데 애썼다. 하지만 김일성은 결국 중국에 목숨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실제로 군대를 파병하여 도와줄 수 있는 게 소련이 아니라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소련도 수수방관하지는 않았다. 드러내놓고 무력을 지원할 수는 없었으므로 북한분과 중국군이 필요로 하는 전쟁물자 즉, 군수 지원을 거의 전담하였다. 당시 중국은 공산정권을 수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자체 군수생산 능력이 취약하였다. 따라서 전쟁에 투입된 수십 개 사단의 병력이 필요한 일체를 소련에 요구하였고 소련은 가능하면 이를 수락하였다. 이는 소련 입장에서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으니 중국의 막대한 병력을 뒷받침하기에는 당시 소련의 능력으로는 한계 이상인 경우도 있어 잇따른 독촉에 감정이 상할 정도였다.

병력과 화력. 이 두 단어는 중국군과 미군의 무력을 대표한다. 그만큼 미군은 압도적인 전쟁장비로 중국군을 괴롭혔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완벽한 제공권 장악과 장거리 포격에는 단순 보병만으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한편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보내는 공격계획에서 먼저 옹진반도 남부를 공격하겠다고 밝혔다. 남한군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그대로 점령하여 대치선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만약 남한군이 응전한다면 이를 빌미삼아 전면적 남침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레 남한군이 옹진반도에 대한 수비를 강화한다고 바로 전면전에 돌입하였다. 이것이 김일성의 판단 오류인지 아니면 스탈린에게 전쟁승인을 받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한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스탈린의 조언대로 따랐으면 상당한 성공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의 성격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일단 김일성 주도의 북한군이 당시 남한을 공격하였으며, 전쟁 명분이 분단된 국토의 통일에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내전임은 명백하다. 내전은 곧 국제전으로 확전된다. 남한을 돕기 위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북한을 지원하기 위하여 중국의 직접 참전과 소련의 간접 참전의 형식으로. 내전이 국제전으로 변모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냉전에 있다. 미국은 동유럽과 중국에 이어 남한마저도 공산화되는 것은 용인할 의향이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산화의 도미노를 저지하여야 했다. 마찬가지로 공산권도 북한의 몰락을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공산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모욕이며, 군사적으로도 자본주의 세력과 직접 국경을 맞닥뜨려야 하는 위험이 생긴다.

씁쓸한 상념에 빠진다. 역사를 반추해 보면 국내의 소위 지도자라고 하는 이들은 모두 최종적인 순간에는 외세에 국운을 의존하였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임진왜란에서는 중국의 명나라에, 구한말에는 이해관계에 따라 일본과 중국, 러시아에 각기 매달렸다. 명분은 민족과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지만 기실은 자신의 사리사욕이 아님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 점은 실질적 대비가 전혀 없이 구두선으로 북진통일만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던 이승만 정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유일한 재주는 일단 유사시에는 국민의 생명과 안위는 나 몰라라 하고 총알보다 더 빨리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는 능력밖에 없다. 이런 자를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려는 자들이 있으니 우습다. 

"스탈린 동지, 상황으로 볼 때 지금 우리가 전체 한반도를 군사적 수단으로 해방하는 것이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믿는다. 남조선 반동세력은 평화통일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북조선을 공격하기에 충분하다고 믿을 때까지, 나라의 분단을 영구화할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다. 우리 군대는 남한 군사보다 강하다. 게다가 우리는 남한 내에서 강력히 일고 있는 게릴라운동의 지지를 받고 있다. 남한의 인민대중들은 친미정권을 증오하고 우리를 도울 것이 확실하다." (P.44, 1949년 3월 스탈린과 김일성의 회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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