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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 -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한비야 지음 / 금토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책이 나온 지도 벌써 10년이 넘는다. 여행 안내서로 이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책도 감히 없을 것으로 단언한다. 덕택에 한비야는 일거에 유명인으로 급부상하고 현재는 비중있는 봉사단체를 이끌고 있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당시를 돌이켜본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는 잔치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선진국 모임인 OECD에도 가입하고 일인당 국민소득 2만불을 향해 맹질주를 하고 있을 즈음, 그동안 좁은 국내에 갇혀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외여행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고 관련 정보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그때 한비야의 책이 시중에 나온 것이다. 한비야 이전과 이후에도 좋은 여행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천운은 존재하나보다.
이제 웬만한 이는 누구나 한 번은 다 보았던 이 책을 나는 새삼스레 처음 펼친다. 그동안 대중적이고 진부한 것에 대한 맹목적 거부심리의 발동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여전히 첫 페이지부터 확 풍기는 상업성에의 배려. 이란에서 반정부 운동가와 데이트를 하는 장면, 그건 시선을 잡아보려는 얄팍한 시도가 아닌가.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를 읽은 후라 그 극적인 대비는 더욱 부정적으로 비친다.
더구나 언제 어떻게 여정이 이루어지는지 당최 감을 잡을 수 없는 산만한 구성. 전체 분량의 삼분지일이나 지나서야 여행의 첫걸음으로 돌아간다. 자아를 한층 성숙시키는 것이 건강한 여행(특히 한비야처럼 오지탐험을 통해서)이 권장되는 주된 이유라고 할 때, 여행기의 순서는 역시 시간배열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본다. 내가 너무 삐딱한 시각으로 이 책을 대하는 게 아닌가 자문해 본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변했지만 배낭여행 한 번 해보지 못한 나 같은 촌놈에게는 한비야가 겪는 갖가지 에피소드, 낯설지만 흥미로운 이국적 풍모, 귀가 솔깃한 정보는 여전히 새롭다. 워낙 저개발국가인 탓일까. 지금 당장 그 나라에 가더라도 크게 변해 있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이와 같은 오지 배낭여행을 하더라도 한비야처럼 즐겁고 활기차게 해낼 수 있을 자신감은 없다. 그만큼 그녀는 능력과 성격은 배낭여행의 정신에 딱 들어맞는다. 어딜 가든 현지인처럼 먹고 자고 하는 것은 말로는 쉽지 실제로는 너무나 어려운 이이다. 치안과 위생이 빈약한 오지는 더더군다나 위험하다.
처음의 어수선함과 못마땅함은 책장을 넘길수록 미지의 세계로의 흥미로움에 함몰되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시리즈의 나머지 책들도 끝까지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