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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버티고
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 김병욱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번 발생한 일은 다시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고 하던가. 베르나르의 책에서 잠시 손을 떼자마자 또다른 베르나르가 내게 바싹 다가온다. 심히 당황스럽게도. 원래는 베르나르의 제2권과 제3권 사이의 막간극으로 볼 예정이었다. 베르나르도 일년의 시차를 둔 것처럼 나도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게 예의가 아닐까 싶어서.
일단 여기 베르나르는 경력이 화려하다. 철학자에 저널리스트이며,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이다. 게다가 해당 분야에서 상당한 명성을 지니고 있단다. 그런 그가 미국의 '월간 애틀랜틱'이라는 잡지사의 의뢰를 받고 미국 여행길에 올랐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발자취를 좇아 21세기의 미국을 재조명한다는 원대한 기획안에 따라.
자동차를 몰고 동북부 뉴포트에서 시애틀까지 일차 미대륙을 횡단하고 다시 남으로 내려와서 중남부 방면으로 재차 역횡단을 하는 그의 여정은 미국 사회를 나름대로 구석구석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의 산물이다.
토크빌은 내게 있어 이름만이 자자한 대가이다. 그의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이 미국에서는 매우 유명하고 심도깊게 연구되는 모양이지만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번역본이 나온지 불과 수 년 안쪽이다. 또 안티아메리카니즘이 마음 한 구석에서 은연중 거부감을 갖게 만든다.
토크빌이 동료와 함께 신생 미국에 온 것이 미국의 교도소를 시찰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베르나르도 미국의 여러 교도소에 관심을 기울인다. 뉴욕의 라이커스 아일랜드에서 쿠바의 관타나모 형무소까지. 사실 관타나모가 쿠바 영토에 있는 줄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매년 형식적인 4천달러의 임차료를 전달하는 가식적인 의식을 보여주는 미국. 땅주인이 거부하는데 힘센 세입자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주저앉는 형국이다. 기가 찰 노릇..
민주주의의 아성인 동시에 불법감금이 자행되는 나라. 자유라는 미명하에 총기소지와 거래가 공개적으로 인정되는 나라. 미국인 히스패닉이 멕시코인 히스패닉을 단속하는 나라. 베르나르와 함께 나도 미국에 어지러움을 느낀다. 아직까지 깊은 뿌리를 남기는 인종차별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뉴올리안즈에서 피해자는 가난한 자와 흑인들이다. 그런데 가난한 자는 대부분 흑인이다.
역시 미국은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는 여러 개의 얼굴"(p.380)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미국의 면모는 외부 관찰자는 물론 미국인 자신들에게도 현기증을 안겨준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래서 베르나르는 책 제목을 '미국의 현기증 or 현기증나는 미국'이라고 붙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미국의 미덕이 악덕만큼 아니 그 이상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의 번영과 존립은 인류사의 수치가 될 것이므로. 베르나르는 "미국이 절망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p.389). "내부의 문명 전쟁이나 분리의 위험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p.389)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체제에 대하여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는 베르나르이지만 미국의 미래에 대해서는 보다 긍정적이다. "새로운 질서에 따라 정돈된 옛 파라미터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구성"(p.396)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은 언제나 추상적으로 존재했었다. 언제나 미국은, 어떤 기억을 공유했다기보다는 어떤 욕망과 이념을 공유하는 것 외에 다른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기원이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물이었다." (p.397)
"미국은 실체 없는 국가다...한마디로 미국은 불가지론적인 국가다." (p.398)
이렇게 보면 미국에 대하여 현기증을 느끼는 것은 저자 베르나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미국을 들여다보는 우리들도 어지럽다. 미국 시스템 자체도 현기증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 미국인은 어떨까? 그들 자신도 스스로에 대해 빙빙 도는 기분이 들지 않으려나 궁금하다.
그나저나 또다른 베르나르가 이 책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 사람은 뚜벅이로 실크로드를 여행하고 여기서는 안락하게 자동차로 미국을 돌아다닌다. 숲을 보는 이와 나무를 보는 이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