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2 - 머나먼 사마르칸트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고정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예기치못한 건강상의 문제로 급거 호송된 다음해인 서기 2000년, 절치부심한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가 다시 걷는다. 터키의 에르주룸과 도우바야지트 사이.

그가 왜 걷는지 이유는 묻지 말기를. 자신조차 이리 무모한 걸음을 지속하는지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 실크로드에 산재한 대상숙소를 살펴보겠다는 것은 최소한의 구실일 뿐이다. 그저 그는 걷고 싶었고 세계사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는 바로 그 길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이 제2권은 터키에서 시작하여 이란을 횡단하고, 투르크메니스탄을 거쳐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 이르는 노정을 담고 있다. 서구에서 볼 때 한때 '악의 축'이었던 문제국가 이란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래서 터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여러 위험과 큰 심적 부담을 안고 그는 출발한다. 이미 터키를 지나왔던 그에게 모험의 흥분과 새로움의 호기심은 상당히 감소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자말아바드의 베남의 집에서 하루밤을 머물게 되며 그는 비로소 자신감을 되찾는다. 그리고 이란의 정치체제가 인간 본연의 정신과 가치를 파괴하지는 못했음을 발견한다.

"처음의 불안과 번민은 끝이 나고, 다시 내 길을 찾았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길을." (p.107)

이란의 정치체제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날카롭다. 신성이 인성을 지배하는 체제. 모두를 신성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인성마저 타락시키는 체제. 소수계급의 특권을 강화하고 영속시키는 체제. 여기에는 타협과 관용이 누락된다. 로제 가로디와 샐먼 루시디에 대한 이해차를 통해 저자의 입장은 분명하다.

정치는 논쟁이다. 종교는 신념이고 확신이다...정치와 종교의 결합은 괴물같은 기형아를 낳았다 (p.149)

그럼에도 그의 이란인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따뜻하다. 신앙에 대한 관점도 한결 여유롭다. 그는 그곳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자동차나 자전거를 거부하고 굳이 도보를 고집하는 것이 그런 연유이다. 중간에 마주치는 도둑같은 경찰과 어두운 기억조차 맵디매운 양념이 된다. 메셰드에 있는 거대한 이맘 레자의 사원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친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한 부부와 그들의 아기가 그늘진 양탄자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천복(天福)의 이미지였다." (p.266)

중앙아시아는 거대한 사막과 준사막의 연속이다. 이란의 소금사막인 카비르사막, 투르크메니스탄의 카라쿰사막과 우즈베키스탄의 키지쿰사막, 중국서부의 타클라마칸사막 등. 여기서는 그야말로 생과 사가 한순간에 오가는 극한 상황에 처한다. 어떠한 가식도 허용하지 않고 맨얼굴로 열혹한 자연을 묵묵히 인내하는 것뿐. 한 번이라도 진정한 자연을 경험한 이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고 한결 성숙해진 채 돌아온다. 그것이 여행과 관광의 차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여행은 사람을 형성시킨다. 그런데 자신을 형성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변형시킨다면?" (p.390)

그래서 여행의 마수에 빠진 사람은 헤어나지를 못한다. 베르나르가 그러하며, 한비야가 그러하다. 흔히들 역마살이 들었다고 하지만, 장돌뱅이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라도 여행의 참맛을 느껴본 이는 다 그러하다. 올리비에도 사마르칸트에서 다시금 "돌아가자마자 다음 여행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p.390)라고 새삼 결의를 다지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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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7.5.1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