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서안까지 도보로 횡단하는 언뜻 보아도 무모하기 그지없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다. 그것도 혈기방장한 이팔청춘도 아니고 현직에서 은퇴한 60대 초로의 나이에.

저자는 진작부터 걷는걸 좋아했다. 이전에는 스페인 순례길을 걸었다고 한다. 속도가 지고의 미덕으로 자리잡은 작금의 눈으로 보기에는 어리석고 무의미하게 비치겠지만 그는 단호히 속좁은 편견을 깨뜨린다.

이 첫권에서 그는 터키 횡단을 시도한다. 아나톨리아라는 유서깊은 지명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터키는 긍정적인 이미지의 국가이다. 한국전쟁때 파병을 해주었고, 지난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형제의 나라로 불리지 않았는가. 하지만 저자의 시각을 통해 볼때 서양인에 비친 터키는 그렇지 못하다. 기본적인 사회시스템조차 갖춰지지 못한 나라. 쿠르드족을 탄압하고 사실상 군대가 지배하는 국가. 겉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하여 애쓰지만 내적으로는 사회적 모순과 지역적 격차, 민족적 갈등을 지닌 모순덩어리다.

저자는 최대한 현지의 자연과 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하고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과는 반반이다. 지저분하고 샤워조차 힘든 호텔에 투덜대고 개도 안 먹을 음식에 절망하며, 보행자에게 극히 위험한 운전문화, 가난하기 그지없는 그네들의 삶과 특히 여성의 지위에 동정심을 느낀다. 하지만 도로에서 차를 태워주겠다는 운전자들의 따뜻한 마음. 손님에게 아낌없이 현관문을 열어주고 호의를 베푸는 인정. "구엘, 차이"하며 쉬었다 가라며 말을 건네는 소박한 인심. 그 모든 것들이 유럽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모습이어서 저자에게 기운을 북돋우고 격려를 일으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갈이 잘 닦이고 치안이 바로잡힌 지역일지라도 혼자 걷기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무시무시한 캉갈에게 물어뜯길 위험, 언제 어느 순간 총에 맞아 비명횡사할 두려움, 도중에 강도를 만나 소지품과 아울러 목숨조차 부지못할 상황 등등 저자는 비교적 담담하게 때로는 살포시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때 그 심경은 당사자 아니면 공감하기 힘들리라. 결국 비위생적인 음식과 물로 인하여 저자는 장도의 달성을 목전에 두고 이스탄불로 긴급 호송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낯선 고장을 찾는 것은 유익한 경험이다. 일단 무거운 엉덩이를 떨치고 일어선다는 결심 자체가 갈채를 받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더해 자전거 여행은 보다 많은 것을 겪고 느끼게끔 한다. 하지만 책의 표제이기도 하며, 저자의 주장이기도 한 도보 여행은 다른 방식을 능가하는 크나큰 장점이 있다.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P.189)

"...지혜란 길을 따라 걷는 중에 얻어지는 법이다." (P.227)

"그들(자전거 여행자)은 세상을 발견하고, 나는 몸소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세상과 직면한다." (P.352)

첫번째 도전에서 저자는 승리와 패배를 동시에 맛보았다. 우려했던 나이를 극복하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획득한 반면 계획표를 지키기 위하여 또는 자기조절의 실패로 강행군을 하는 바람에 성공의 목전에서 실패하였다. 병원에서 그는 불현듯 깨닫는다.

"진정한 느림은 포기를 내포"(P.436)하는 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많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저자는 몸이 회복되면 불사조처럼 다시 우뚝 서서 신발끈을 조이리라. 반면 오가는 전철 안에서 나는 그의 체험담을 담은 책장을 침발라 넘길 따름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근대나무 2011-09-06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7.4.2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