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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판토 해전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평점 :
삼부작의 1부가 투르크와 비잔티움, 2부는 투르크와 성 요한 기사단의 대결이라면, 3부는 투르크와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연합군이다.
레판토 해전은 역사적 사건이다. 여기서 투르크의 서진이 저지당함으로써 기독교 세계는 이슬람화를 간신히 모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성전(聖戰)으로 서구에서 평가받고 있다. 반면 투르크/터키에서는 국치(國恥)로 여겨 역사책에 실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저술의 장점은 평이함에 있다. 그는 복잡다기한 역사적 사건의 모든 것을 낱낱이 보여주겠다는 무리한 시도를 애초부터 하지않는다. 대신 눈높이를 대폭 낮춰 창공의 콘도르가 아닌 참새(너무했나?)의 눈으로 전쟁을 보고 있다. 고매하고 지체높은 분들만이 아니라 바로 그 곳에서 피와 땀을 흘리는 이들의 생각과 행동, 개인사를 접목하는 데 큰 장점이 있다. 더불어 전투 그 자체보다도 역사적 배경과 사후 영향 등 전체적인 굴곡을 유장하게 그려내는 점은 단순히 전쟁보다도 '전쟁으로 발현된 정치'가 어떤 역사적 변화를 가져왔는가라는 의미에서 보다 거시적이기도 하다.
레판토 해전 자체는 서구 기독교세계가 분명히 승리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전체적 국면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는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우선 이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십자군이 결성되지 못하였다. 이는 그만큼 종교가 현실을 지배하는 능력이 약화되었음도 의미하지만 더 크게는 개별 국가의 영토국가화로 서구 국가간에도 이해관계가 화합되기 어려울 정도로 상충되었다는 뜻한다. 레판토 해전을 앞두고 연합군이 결성되었다는 자체를 차라리 의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한 베네치아가 상실한 영토(키프로스) 수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투르크는 키프로스를 공략한 후 여세를 몰아 지중해 서쪽으로 진격을 하다가 저지된 데 불과하다. 물론 저지되었다는 사실 자체도 투르크 공포증에 걸려있는 기독교 세계에서는 커다란 이슈였지만, 반격을 가한 것도 아니고 재기불능으로 궤멸시킨 것도 아니므로 제삼자의 눈에는 그리 큰 의의는 없다고 본다. 승자인 베네치아가 불리한 조건으로 강화협상에 나섰다는 자체가 이를 반증한다.
투르크는 전쟁에서 패배햇지만 키프로스를 남겼고 해군을 재건하였다. 베네치아는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키프로스를 빼았겼고 무역재개를 위하여 막대한 통행세를 납부하게 되었다. 팔과 수염의 차이다.
이제 서양사회는 중세를 넘어 근대로 전환된다. 소위 대발견의 시대. 이제 경쟁무대는 좁은 지중해가 아니라 대양으로 펼쳐진다. 동지중해를 갖고 아웅다웅하던 베네치아와 투르크는 서서히 세계사의 주역에서 물러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레판토는 지중해를 중심한 세력다툼의 최후 대전이라는 의의가 더 크지 않나 생각한다.
...마지막 부분의 글귀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 단 한번이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사랑을 받은 여자는 다시는 외로워지지 않는 법이다." (P.273)
피흘리는 전장의 참혹함보다도 한 여인의 깊지만 고요한 슬픔이 더 철렁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