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만들어진 신>을 읽고난 후 갑자기 도킨스에 궁금증이 생겨 집어들었다. 실제 책을 구입한지는 꽤 됐지만서도. 덧붙이자면 이 짤막한 소감도 읽은지 두 달여만에 적는다.

출간된 지 삼십여년이 경과하였음에도 이 저작의 내용은 도전적이다. 진화의 주체는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것이다. 인간과 같은 개체는 유전자의 생존을 보조하는 기계라고 한다.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여기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몇십년 전에 이런 주장을 과학 이론으로 전개해 나가니 신심깊은 자와 보수파에서 질색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도킨스는 당당하다. 자신은 반대증거가 제시되면 언제든지 이 가설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 요는 아직까지는 이보다 유효적절한 이론은 없다는 것. 그의 이런 굳은 믿음이 드디어 신(神)의 영역에까지 침범한 것이 신작이다.

간단한 개념만 정리하면,

1. 이기적 유전자가 곧 이기적 개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2. 유전자는 복제자, 개체는 운반자.
3. 다윈의 진화론은 개체수준에서 유전자수준으로 조정되는 전제에서 타당하다.
4. 게임이론을 통해 이타성에 의존하지 않고도 협력적 관계 생성 및 육성이 가능하다.
5. ESS : "독립된 이기적 단위의 집합이 어떻게 해서 단일 조직화된 전체를 닮게 되는가를 비로소 분명히 가르쳐 줄 것이다."(P.166)
6. Meme(밈) : 문화적 유전자

이 책은 분명 자연과학서다. 하지만 뛰어난 과학서가 으레 그러했듯이 기다란 인문학적 스펙트럼을 흩뿌리고 있다. 어쩌면 그 가치는 자신의 본래 영역보다도 훨씬 클지도 모른다.

진화론에 대한 거부감은 대체로 독실한 종교인일수록 큰 편이다. 사람이 어찌 원숭이의 후손일 수 있겠는가? 맞다. 사람은 원숭이의 후손이 아니라 단지 사촌일뿐이다. 선조는 미약하기 이를데 없는 단세포 생물이리라. 태초에 신이 있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논리는 쉽지만 근원적 약점이 있다. 신과 같은 완전체는 누가 창조하였는가? 그냥 저절로 있었다는 주장은 회의론자의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도킨스는 용의주도하다. 유전자의 맹목적 이기성을 제시한 다음, 그것이 공멸이 아닌 공생으로 귀결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개체간에는 게임이론을, 집단간에는 ESS 개념을 도입한다. 미워하지만 대의를 위하여 연합하는 인간들처럼 유전자와 개체는 그렇게 협력한다. 그리고 인류는 진화한다.

개정판은 끝장에서 잠시 후속작 <확장된 표현형>울 소개한다. 이기성이 유전자와 개체 수준을 뛰어넘어 타 개체를 조종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밈을 빼놓으면 안 된다. 아직은 정착된 개념은 아니다. 영원히 주변을 맴돌 수도 있다. 그것은 생물학적 유전자만큼 직관적이지는 못하다. Gene 이 생물학적/유전학적 정보를 복제한다면, Meme 은 문화적 정보를 복제하여 후손에 남긴다. 제법 그럴싸하지만 아직은 미심쩍다.

유전자는 이기적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이라는 개체는 단순한 운반자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타고 있는 복제자를 압도하여 타고난 이기성을 희석시키는 역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살은 유전자적 차원의 사건인지 아니면 개체수준의 사건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도킨스의  공헌은 분명하다. 비논리성이 존중받는 예술과는 달리 과학의 영역에서 적어도 합리적 사고의 세계에서는 그의 친구 이기적 유전자의 존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인간 인식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켜준다면 말이다. 훗날 탁월한 대체이론이 등장한다면 그때 은퇴시켜도 된다. '불편한 진실'이란 용어는 앨 고어가 특허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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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7.10.3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