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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꽤 잘 팔린 소설이다. 표지디자인도 그러하고 소재와 주인공도 많은 젊은 여성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음에 틀림없다. 나중에 TV 드라마의 소재로 삼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바로 직전에 읽은 소설과 이것과는 상대적 측면에서 남성 작가와 여성 작가의 차이를 보여준다. 남과 북, 고정간첩이 등장하는 대척점에 30대 초의 미혼여성의 삶과 사랑이 펼쳐진다. 그리고 지향점은 결혼으로 이어진다. 비록 오은수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문득 <오만과 편견>이나 <이성과 감성>이 떠오르는 것은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된 테마의 공통성일 것이다.
오은수를 포함한 소위 삼총사는 평범하다고 할 만한 사랑의 귀결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도피처로 결혼을 하였다가 곧 이혼한 재인. 깨어진 첫사랑을 다시 만나 이제는 자식있는 이혼남이 된 그에게 다시 끌린 유희. 이렇게 오은수의 친구는 사연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오은수 자신은 어떠한가. 한동안 7년 연하의 대학생과 동거 비슷하게 지냈으나 결국 나이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진다. 그리고 노처녀로 남는 게 두려워 재미는 없지만 무난한 남자와 결혼하려고 서두른다. 이들 세 친구의 모습을 우리 시대 미혼 여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섣부른 오해는 금물이다. 소설의 극적 효과를 위해 한 자리에 모았을 뿐이다.
도시의 독신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생활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무의식중에 절감한다. 얼핏 화려한 나날. 하지만 한 겹 안으로 들어가면 오은수처럼 불안감에 젖어 있다. 한해 두해 흐를수록 기회를 상실하고 영원히 뒤처질 것 같은. 이윽고 화려한 연애 시절을 뒤로 하고 이제 평생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필요해지는 시점. 여기서 요즘 여성들의 변화된 성의식을 느낄 수 있다. 신체건강한 성인여성으로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의 책임하에 즐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관념. 여기에는 필요시 자발적인 유혹도 포함된다.
오은수가 김영수와 결혼에 성공했다고 치자. 그들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낼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아마 오은수 부모와 같이 처음엔 밋밋하지만 무난한, 나중에는 서로 남남처럼 지낼 것이다. 그것은 결혼을 화려한 싱글의 퇴락을 구해줄 피난처로 삼는데 연유한다. 남들도 다 하고 그냥그냥 살아가니까 별 고민없이 나도 하련다. 이것의 어려움은 상호간의 노력없이는 만족스러운 결혼생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재인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김영수와 깨진 것은 오은수에게 다행이다.
오은수와 태오의 결합은 불가능하였을까? 아마 태오가 영화판에 쫓아다니지 않고 공부와 취업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가능하였을 것이다. 사실 오은수와 여러모로 궁합이 맞는 이는 태오가 아니던가. 오은수는 사랑과 꿈만으로 인생을 올인 할 나이는 아니다. 반면 태오는 아직 실현여부에 대한 큰 고민없이 자신의 하고자 하는 바를 시도할 나이다. 이 둘의 비극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런 면에서 과감히 자신의 소망에 충실하려는 유희가 당장은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 수술로 풍만해진 가슴을 당당하게 내밀며 뮤지컬 오디션에 또다시 도전할 것이다. 하지만 내일은 어떨까? 유희는 내일도, 모레도 당당할 수 있을까?
여성이 독자적 주체로서 자리잡으려면 여러 요인을 충족시켜야 될 것으로 본다. 경제적 독립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심리적(정신적) 자주성이다.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의 하나가 평상시에 당당한 여권을 주장하다가 어떤 순간에는 남성에게 미루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지적이다. 결혼을 탈출구로, 도피처로 여기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게 당당하다면 늦게 하는 것과 아예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의연한 태도를 취해야 할 텐데 아직까지는 그러하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유희가 어쩌면 '당장은' 바람직할 수도 있다고 한정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유로 재인이 비록 아픔을 한번 겪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정도를 밟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이 도시는 외관상 눈부시게 화려하다. 거리에는 명품과 고급레스토랑으로 넘쳐난다. 게다가 온갖 치장을 아끼지 않는 선남선녀들은 왜 그리 넘쳐흐르는지. 하지만 파티가 끝나고 새벽의 거리에 나가보라. 거기에는 삭막함만이 흩어져 있다. 지난밤의 흔적은 악취가 되어 제대로 숨을 쉬기 어렵다. 골치가 지끈거린다. 구석에는 쓰레기와 함께 신문지를 덮은 노숙자들이 아직 다른 세상의 감미로움에 젖어 있다.
달콤한 나의 도시라! 첫입은 달콤할지언정 뒷맛은 쓰디쓰기 이를 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