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젊은 남성들에게 거리는 즐거움과 유혹의 장소이다. 좌우를 둘러보자. 혹독한 겨울바람에 여성들은 그들의 늘씬한 다리를 레깅스를 이용하여 한껏 드러내고 있다. 감추지만 감추지 않는 미덕. 한여름은 어떤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한 치마길이는 그저 미니스커트라고 부르기가 멋적다. 초미니스커트로 싱싱한 매력을 뿜어내는 맨 다리를 드러낸다. 불과 십수년 전과 비교해도 혁명적인 변화이다. 더구나 봉긋한 가슴을 타인에게 노출하는 의상도 인기를 끌고 있다. 노출의 강도는 해마다 더해간다. 이제 살짝 노출은 자연스럽게 여길 정도다.

이러한 패션이 여성들의 단순한 자기표현 내지 자기만족이라고 여기는 시각은 너무 안이하고 순진하다. 비록 여성들은 부인하겠지만 이는 암묵적으로 남성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과 노력의 산물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의 사회 질서가 여성을 향락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여성은 죽는 날까지 영원히  관능을 자극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여성들 대부분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이렇게 행동할 뿐이고, 이른바 교양있는 여성들도 자신이 어떤 법칙을 따르고 있는지, 자신의 행동이 추구하는 효능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P.281)

저자에 따르면 "지극히 잘 계산된 여성적 교태의 형태로는 우선 '위에서 아래로'든 '아래에서 위로'든 방향을 불문하고 나타나는 노출을 들 수 있다...여성들 대부분은 아름다운 자신의 다리를 아주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므로 다리의 장점을 잘 드러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P.281~283)

무엇보다도 20세기초에 이러한 선구적인 저작이 나올 수 있었다는게 놀랍다. 패션의 사회사든가 하는 영역은 과문이지만 아직 국내에서 심도있게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던터이다. 과연 <풍속의 역사> 저자다운 안목과 관록이다.

'캐리커처'는 지금도 비주류의 표현 방식이다. 신문 한구석에 한 컷짜리 만평으로 아니면 길거리 화가들의 용돈벌이 수단일 뿐, 이것이 서양 근대사에서 대대적으로 제작되어 왔고 저자 푹스는 혜안을 가지고 이의 가치를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캐리커처는 단순한 희화화가 아니다. "진실은 평범함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극단에 놓여 있다. 극단적으로 과장해야만 사물의 본질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다."(P.736) 여기에 캐리커처의 본질과 가치가 위치한다.

캐리커처의 본격적인 등장은 봉건시대가 끝나고 시민계급의 사회의 주류로 부상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탁월한 캐리커처 작가들은 근대 시민계급이 넘치는 힘을 이에 상응하는 형태로 마음껏 밯뤼하는 시기가 도래해서야 등장한다."(P.325) 종교의 영향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절 캐리커처의 표현방식은 불손하게 보였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비꼬고자 하는 대상이 애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리라. 교회 아니면 신의 국가? 그래서 인간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사상이 호흡을 비교적 자유로이 내뿜을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해서야 캐리커처도 햇볕을 쬐기 시작한 것이다.

푹스는 특히 이곳에서는 캐리커처를 통해 여성 풍속의 변천을 살피고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여성 풍속의 변화는 단순한 취향과 변덕의 산물이 아니다. 즉 여성 사회사(P.737)라고 지칭해도 무방하다.

위에서 언급한 노출과 교태로 돌아가자.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비난하지 않는다. 이는 여성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교태가 결코 부도덕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강조해야 한다. 교태는 성생활에서 여성이 지닌 수동적인 역할 때문에 필요불가결"(P.305)하다고 오히려 도덕적 타당성을 옹호한다. "여성의 교태는 타고날 때부터 지닌 수동성 때문이므로, 대부분의 여성이 교태도 타고난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두자."(P.271)

저자의 인식이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보부아르라면 펄펄 뛰고도 남음이 있겠다. 그런데 푹스는 오히려 역공을 편다. 초기 여성해방운동의 목표가 잘못되었다고 말이다. "여성의 완벽한 정신적인 해방을 추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정신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 남성들에게는 능동적인 성의 특성에 맞는 창조적이고 지적인 능력이, 여성들에게는 수동적인 성의 특성에 맞는 깊은 감정이 날 때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을...자연적인 이분법을 인정함으로써 이상적인 인류 발전의 기초를 놓을 수 있다."(P.715~716)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자, 근래 많이 회자되는 슬로건의 본의를 푹스는 일찍이 외쳤다. 그의 선구적 시각은 아리스토텔레스, 스펜서, 쇼펜하우어 등을 비판하는 장면(P.536~537)에서 명확히 알 수 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위에 내재하는 것은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그리고 가장 오래 지속되는 계급 통치일 뿐이라는 사실"(P.537)을 그는 반복하여 주장한다. 

피지배계급인 여성에게 인생을 업그레이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럴듯한 '바지'를 잡는 것이다. 그래서 '바지전쟁'이라는 캐리커처가 나왔다. 야한 수영복을 입은 자신을 비난하는 친구에게, 자신은 지참금이 이것 밖에 없다고 해명하는 캐리커처 역시 이를 반영한다. 여류작가의 유명한 소설 <오만과 편견><이성과 감성>은 어떤가? 당시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의 모든 관심이 잘난 신랑감을 잡는데 집중되어 있음을 있음을 알 수 있다. 결혼에 목매다는 여성을 한심해 해서는 안된다. 그들에게는 생계가 달려있는 문제다. 독자적인 생활수단이 전무한 그들에게 사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가장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셈이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 진출과 자본주의의 관계도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여권의 신장이 언제나 사유재산과 생산양식의 변화와 보조를 맞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성 계급들이 차례로 자영업과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현상은 자본주의와 대기업이 발달하면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엘렌 케이)"(P.713)

이상을 감안하면 여성 풍속의 변화, 모드(패션)는 의미를 갖게 된다. 코르셋, 데콜테, 허리받이 치마, 굴렁쇠 치마, 크리놀린, 퐁탕쥬 등 용어도 생소한 모드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서 모드를 가장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도록 강요한다...의복은 교태의주요 형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성대이다"(P.421) 따라서 모드(패션)은 속성상 항상 새로움을 지향한다. "눈에 띄는 것은 아름다움이나 조화로움이 아니라,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다...두드러져 보이는 방법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의복, 그중에서도 새로운 의복이다. 그러므로 '늘 새롭게!'가 표어가 된다. 모드는 매일 자신의 형태를 바꾸고, 여성들은 언제나 새로운 모드를 통해 자신의 매력, 육체와 정신과 물질의 소유 상태를 온 세상에 보임으로써 이 표어를 충실히 따른다."(P.421~422)

그렇다면, 캐리커처로 보는 여성 풍속사(사회사)의 의의는 무엇일까, 하필이면 캐리커처를 통해 여성사를 파악할 이유가 존재하는가? 저자의 답변은 서론에 나와있다.

"여성의 캐리커처는 인류 양심의 한 부분이라는 것, 이것이 비밀스러운 반어법이다. 풍자적인 점층법을 통해 여성의 모습을 지독하게 추하고 부자연스럽게 그리는 모든 미학적, 도덕적인 탈선은, 기본적으로는 신이 만든 아름다운 피조물의 모습이 그냥 사라지게 둘 수 없으며, 반대로 이것이 원래 가지고 있던 권리를 찾게 해주자는 욕구, 즉 이것이 언젠가는 자신의 원래 성향대로 완전한 것이 되도록 하게 하자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캐리커처가 보여주는 의식적인 추함만큼이나 진정한 아름다움을 조용하게 장려하는 것도 없다."(P.48~49)

언뜻 말초적 흥미만을 자아내기 쉬운 소재로 저자는 묵직한 저작을 만들어냈다. 1세기전이라는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구자적 혜안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물론 저자를 비판할 여지는 충분하다, 그의 여성관,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비판 등. 하지만 옮긴이 말마따나 요즘도 여성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변모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자. 남성이든 여성이든. 레깅스와 미니스커트, 클리비지 룩, 시스루 룩, <미녀는 아름다워>가 보여준 성형 광풍 등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저자의 분석이 유효함을 입증하는 바로미터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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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1.25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