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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탈레반의 납치사건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늘어난 듯 싶지만, 논의의 초점은 인질들의 현지 활동과 종교단체의 편협한 신학관에 집중되어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문화(종교를 포함한) 상대주의를 존중하는 한계가 어디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문학작품이 아니라 논픽션을 픽션의 형식을 빌어 구현한 것 뿐이다. 이를데 없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준엄한 문제제기가 담겨 있다.
더불어 작금의 아프간 사태의 시대적 배경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강추하련다. 소련의 침공과 저항전, 소련의 철수와 저항군의 카불 입성. 저항군의 분열과 내전. 난민들 사이에서 세력을 키운 골수 이슬람원리주의자 탈레반의 등장과 현상까지 일목요연하게 사태를 꿰뚫어보게끔 도와준다. 이 점이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받게 된 연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소설이니만큼 문학적 매력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마리암. 불가항력적인 라시드와의 결혼. 몇 번의 유산으로 완전히 라시드의 종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로켓포 폭격으로 일가족을 잃은 라일라. 살기 위하여 라시드를 받아들인다. 그녀는 마리암과는 달리 신식 교육을 받았으므로 내심은 굴복하지 않는다. 심해지는 라시드의 학대와 마리암의 살인. 이렇게 소설은 70년대부터 지금 이순간까지의 두 여인의 삶을 시대 상황과 결합하여 비교적 담담하게 그린다. 너무 비참해서 눈물을 뚝뚝 흘려야 할 순간임에도 오히려 작가는 독자를 다독이는 듯 때로는 무심하기조차하다.
아프간에서도 일상적인 삶이 영위되었다는 것이 놀랍게 다가왔다. 희노애락이 존재하고 가족끼리 개인과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이 보장되는 사회. 내가 본 아프간은 언제나 전투의 참상에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프간 여성들은 물론 가장 큰 피해자이다. 그들이 탈레반 치하에서 겪는 어려움은 이 책에서도 잘 나와있다. 여성을 이등 인간으로 간주하는 편향적 시각. 이는 반대로 남성에게는 거의 무한한 자유를 제공한다.
"남자가 자기 집에서 무슨 일을 하든 그건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우리는 규칙상 개인적인 가정사에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시겠죠. 남자한테 유리할 때만 그렇겠죠." (P.360)
이것은 라시드에게서 탈출하려고 하다가 버스 터미널에서 잡힌(단지 동승하는 남자없이 여행한다는 이유만으로) 라일라와 경찰의 대화다.
문득 라시드가 인간적으로 불쌍하게 여겨진다. 그에게 다른 아프간 남성들보다 심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문화적 전통에 충실하였다. 단지 성격이 조금더 괴팍하였을 뿐. 중간중간의 정세 분석을 보면 그는 결코 막무가내의 몰상식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외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가치관과 태도는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도 체제의 희생자이다.
나는 문화상대주의자(문화다원론자)다. 우리 민족의 문화와 종교가 타인의 것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싶지 않다. 가급적이면 일방적인 시각을 벗어나 당사자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으레 오해와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나의 일방적인 주관과 의사를 타방에 강요하는 것은 커다란 폭력이다.
그럼에도 일정한 한계는 설정되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과 의사결정을 통해 선택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 선택을 억압한다면 제 아무리 고상하고 훌륭한 가치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 자체가 이미 비인간적이고 불합리하다.
탈레반이 국제 사회에서 비난받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