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니니 - 세기의 마에스트로 현대 예술의 거장
이덕희 지음 / 을유문화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클래식 음악감상 심화학습 제2편이다. 글렌 굴드에 이은 토스카니니. 강렬한 개성을 뿜어내 한 시대를 호령한 거인이다. 이런 유형의 저작은 위인전기와는 읽는 포인트가 다르다. 여기에서 거창하고 위대한 업적을 찾아내거나 본받을저믈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음악감상에 조금 더 깊숙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음악가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는 연주가나 작곡가나 동일하다.

그런 점에서 토스카니니의 개인적 삶의 이력은 흥미롭지만 신변잡기에 불과할 수 있다. 그가 무척이나 바람둥이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가정의 가치에 대한 숭고한 믿음을 지녔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이혼한 친구 및 사별했으나 곧 재혼한 친구와는 절교를 했다는 점도.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 아직까지 지휘계의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양대 산맥이다. 요즘와서는 후자에 대한 인기가 더 높지만 말이다. 푸르트벵글러에 대한 감상은 소위 '좋았던 시절'에 대한 회고나 기계적 현대사회의 반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19세기 낭만적 풍조가 지배하던 시절, 토스카니니는 이성에 바탕을 둔 음악을 추구하였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이었으며 그는 한치의 주저와 망설임도 허용하지 않고 평생을 진력하였다. 그 결과 20세기 중후반기에 이르러 비합리적 음악 관행이 일소되었던 것이다. 조지 셀, 카라얀 등의 후배 지휘자와 카를로스 클라이버,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은 물론 최근의 대세인 시대악기 해석의 선구자는 바로 토스카니니이다.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는 라이벌이 될 수 없는 관계다. 토스카니니의 최전성기인 1930년대, 그는 60대에 접어든 노거장이었고, 푸르트벵글러는 이제 전성기의 길에 들어선 40대의 장년이었다. 게다가 푸르트벵글러의 명성은 독일내에 국한되었지만, 토스카니니는 유럽은 물론 미국마저 휩쓴 말할나위없는 최고의 거장이었다. 이는 이 책의 2부 '토스카니니와 빈필'을 보면 알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와 나치의 관계를 보면서 새삼 토스카니니에 대한 외경심이 우러나온다. 그의 철저한 반파시즘적 태도는 음악가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사표가 될 만하다. 무솔리니가 토스카니니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그렇게 노력할 정도였고 별도 파일로 관리하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토스카니니는 음악 그 자체만을 지향하였다. 그 점에서 이른바 대중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주의를 쏟았던 일부 지휘자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에 얽힌 수많은 일화는 대부분 순수한 음악정신의 옹호와 관련된 것이 많다. 그토록 그는 순수했는데, 후인들은 그의 진면모를 알지 못하니 슬프기조차하다.

오늘날 그의 자취는 주로 만년에 NBC 교향악단과 남긴 음반을 통해 접하게 된다. 오케스트라의 수준은 최고가 아니었고, 녹음은 너무 메마르고 각박하였다. 토스카니니는 자신의 음반을 싫어했다고 한다. 또 공연장에서 토스카니니 지휘를 들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오늘날 전하는 음반의 사운드는 실연에 도저히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부 악곡에서 그의 연주는 가히 전설로 남아있을 정도이니 그의 대단함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의 음반이 조금만 더 좋은 녹음으로 남아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그저 허망한 바램에 그칠뿐.

* 토스카니니 지휘의 개인적 선호음반 (오페라는 빼고, 잘 모르니까)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레스피기의 로마삼부작
베르디의 레퀴엠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 (w/호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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