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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왕
니콜라이 바이코프 지음, 김소라 옮김, 서경식 발문 / 아모르문디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실직고하면, 덤으로 <등에> 소설책과 음반을 준다는 바람에 혹해서 덜컥 구입해 버렸다. 한편 예전에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던 사냥일기가 떠올라서 혹시나 그 재미를 다시 즐겨볼까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부제 그대로 '만주의 밀림을 호령한 한국 호랑이의 일생'을 기술하였다. 소설 형식을 취했지만 논픽션에 가까운 작가의 체험담이다. 한국 호랑이라, 아마 작가는 시베리아 호랑이라고 표현하였을 것이다.
20세기 초반, 우리나라와 중국에게 격동의 시기는 만주 밀림의 생물에게도 파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숲속의 대왕도 마찬가지다.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무시하고 지냈던 중국인 주민들 틈으로 조금씩 파고드는 러시아인들과 그들의 기계문명. 대왕은 자신의 영토와 삶의 방식을 지키려고 투쟁하다가 영웅적인 최후를 마친다. 매우 감상적인 내용이지만 담담한 서술이 이를 중화시키고 있다.
'위대한 왕'은 서구에 의해 스러지는 동양 그 자체이다. 언뜻 승리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섣부른 감상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의 삶의 이력을 되짚어보면 그 또한 패배한 도망자의 처지다. 즉 그는 호랑이를 통해서 몰락한 옛적 삶을 그리워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에게도 호랑이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영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산신령 내지 산군(山君)으로 불려 두려움과 숭배를 받았다. 하물며 숲의 바다인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따라서 주민들이 보이는 행동양식은 현재적 시각에서 제아무리 어리석다고 할지라도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다. 사냥꾼들의 법을 실행하기 위해 위대한 왕에게 처형을 맡기는 장면이 바로 그러하다. 여기에서 호랑이는 절대적 권위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타이가의 정의가 실현되었다. 위대한 왕은 최후의 재판관이자 오래된 법의 집행자였다. 엄숙한 정적이 다시 찾아왔다." (P.216)
불과 백년도 안 된 시절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에 호랑이는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백두산 일대와 만주 지역에 호랑이가 생존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시된다.
<위대한 왕>이 동물 문학으로서 얼마나한 가치를 지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난 그저 여기에서 아 그래 이런 시절도 있었구나 하는 사라진 과거의 흔적을 회상하는 것에 위안을 삼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