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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에델 릴리언 보이니치 지음, 서대경 옮김 / 아모르문디 / 2006년 4월
평점 :
쇼스타코비치의 <등에>를 듣고 있다. 소설 <등에>의 영화음악이다. 그답지 않게 선율이 잔잔하다. 오히려 로맨틱한 편이다.
이 책은 사연이 있다. 아모르문디에서 신작 <위대한 왕>의 마케팅을 위해 재고로 남아있던 소설과 영화음악 CD <등에>를 사은품으로 제공하였다. 덤으로 주는 책에 따르는 '비매품' 표기나 출판정보 생략 등이 전혀 없는 완전한 서적이다. 출판사의 고육지책이 떠오르면서도 한번 읽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에>는 정치소설 내지 혁명소설이다. 통상적인 이념소설은 아니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다. 종교소설이자 혈연을 다룬 가족소설이기도 하다. 영국 여류작가가 이탈리아를 무대로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이 재미나게 다가온다. 이미 백년도 더 된 옛 소설이지만 주제는 여전히 새롭다.
작품은 3부로 나뉘지만 크게 보자면 두 부분이다. 아서 시절과 '등에' 리바레즈 시절로. 젊은 아서에게 그 날은 너무 가혹하였다. 동지들, 특히 젬마의 불신은 육체적, 심리적으로 쇠약한 그가 감내하기에는. 거기에 숨겨진 탄생의 비밀.
십수년 후, 젬마는 미망인 볼라 부인이 되어 혁명가 집단에 속해 있다. 풍자 팜플렛을 만들기 위해 필명을 떨치는 등에를 불러오고 둘은 마주친다. 일방은 상대를 알지만 타방은 알지 못한 채. 등에는 존경받는 몬타넬리 주교를 유독 강력히 풍자한다. 개인적인 감정이라도 있는듯이.
소설의 전개는 등에와 젬마가 함께 본격적인 무력 혁명 준비를 하는데 뛰어들면서 극적으로 굽이친다. 스파이의 밀고로 등에와 대원은 군대의 추격을 받고. 등에는 충분히 탈출할 순간이 있었음에도 몬타넬리 주교를 보는 순간 스스로 도망을 포기한다.
그리고 종결부는 등에와 몬타넬리의 대면. 여기서 인간의 사랑과 신의 사랑은 화해와 대결이라는 갈등구조를 겪는다. 미워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존재. 죄책감에 신의 자비와 용서를 끊임없이 구하는 성자.
해피엔딩을 원하는 독자의 기대를 작가는 처참히 무너뜨리고 부자는 스러져간다.
지금이야 종교적 영향력이 많이 퇴색하였지만 혁명의 시대 19세기 중반에는 많은 지성인들이 종교 문제로 골머리를 썩었을 듯 하다. 타락한 성직자. 종교적 세속적 영향력을 휘두르는
교황. 대중의 마음 깊숙히 자리잡은 굳건한 신앙심 등.
아서의 선택이 옳은 길이었는가 묻고 싶지만, 달리 마땅한 대안도 생각나지 않는다. 누구나 본인의 처지가 아니면 쉽게 말하는 법이니까. 자신을 이해하고 모든 것이라고 믿어왔던 존재로부터의 몰이해와 배신. 그래서 아서는 "이 따위 기생충 같은 작자들을 기필코 몰아내지 않으면 안 돼.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지."(P.94)하며 등에로 다시 태어나는 순례의 길을 자처한다.
그래. 아서에서 리바레즈로의 변신은 간단하지 않고 무수한 치욕과 고통, 위험을 인내하는 자기정화의 길이다. 현대인들이 조금은 가볍게 치루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처럼.
귓전에 울리는 로망스가 마음을 잔잔히 어루만진다. 서정품의 음악이다. 쇼스타코비치도 알았음에 틀림없다. <등에>가 본디 인간애와 사랑을 다루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