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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 지구의 체온과 맥박을 체크하라
제임스 러브록 지음 / 김영사 / 1995년 3월
평점 :
절판
일찍이 <가이아> <가이아의 시대>에 이어 나온 3부작 중 하나이다. 그 당시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구입을 차일피일하다보니 어느새 절판되고 만 가슴 아픈 사연의 책이기도 하다. 불현듯 호기심이 동해서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았다.
그래도 지금은 '가이아'라는 용어는 물론 '가이아 이론'도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고 인정을 받는 것 같다. 역시 격세지감이랄까. 십여 년 전만해도 러브록의 저서는 소위 '신과학'이라 하여 정통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여기 이 책은 전작들에 비해 조금 더 대중 친화적으로 접근하였다. 사진도 도판도 많이 집어넣어서 이것만 훑어보아도 저자가 말하는 바를 대강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아무리 쉽게 썼다하더라도 문외한에게는 어렵긴 마찬가지지만.
러브록은 지구생리학의 관점에서 지구(가이아)를 꼼꼼히 진찰한다. 저자는 이를 행성의학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가이아'는 다소간의 혼동을 자아내는 개념이다. 가이아를 지구의 생명체와 환경 사이의 자율조절체계라는 시스템적 관점에서 정의내리는 게 보통이다. 이러한 자율조절체계의 목적은 바로 생명체의 생존이다. 저자는 설명의 편의를 위하여 종종 가이아를 생명체로 비유하여 표현한다. 때로는 생명체처럼 다루기도 한다. 이렇게 가이아를 일종의 유기체로 보는 것을 묵과하는 의견에 여러 주류 과학자들은 반대를 표명한다.
이 책에서 여전히 저자의 태도는 모호하다. 저자는 가이아 가설을 반대하는 학자들을 반박하고 자신의 가설을 옹호한다. 물론 반대 학자들도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애매한 입장 표명에 더 큰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분명히 지구 전체를 살아있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보는 것은 참신하며 그동안 놓쳤던 많은 부분에 조명을 던진다. 저자가 예시(P.26)했듯이 대기성분 분석을 통해 화성에 생명체가 없으리라는 예측, 바다에서 육지로의 대류를 위해 화합물을 합성하는 생명체의 존재, 미생물에 의한 암석분해로 탄산가스의 비율 조절, 해조류의 황화물가스 배출로 구름의 양을 통한 기후 조절 등.
전통적인 환원주의 시각에 대비되는 이런 시각을 전일주의적(holistic) 관점이라고 한다. 부분으로 쪼갠 후 다시 합친다고 원래의 전체와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이 책을 읽어나가면 참으로 흥미로운 지구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보게 된다. 초기 지구의 메탄가스 대기가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질소와 산소 위주의 대기로 변화했는지. 가이아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생물계와 무생물계가 어떻게 협력 작업을 벌이는지 등. 이런 내용을 접하면 지구의 조그만 존재인 인간이 가이아의 안정성을 깨뜨리는 행동에 가이아가 어떤 식으로 응징(자기조절작용)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따라서 저자가 자연보호 환경운동가적 구호를 외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의외의 지식도 챙길 수 있다. 산소는 생명체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독성 물질이라는 것. 프레온가스로 인한 오존층의 파괴보다는 온실가스의 증가나 토지의 남용이 더 큰 잠재적 위험을 지니는데 언론과 사람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 등.
이 책은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어렵지만 저자의 다른 책들을 통해서라도 지구라는 존재가 얼마나 섬세하며 치밀한 시스템인지 새삼 느껴보기 바란다. 목차의 제목 그대로 '인간이라는 세균들'이 병균이 되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