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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의 인식 1
송건호 외 / 한길사 / 2004년 5월
평점 :
출판정보가 기재된 뒷면을 보니 발행일이 1990년 2월로 나와 있다. 워낙 스테디셀러다 보니 요즘은 어떤 표지 디자인으로 꾸며졌을까.
현 시점에서 읽어도 부분적으로 참신하고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내용이 제법 있다. 출판 당시인 70년대말과 80년대에는 사회적으로 얼마만한 파장을 미쳤을지 새삼 깊이 인식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에 연이은 독서인지라 아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뭐든 그 때가 있다면 나는 약간 시기를 늦게 맞춘 꼴이다. 그래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한발 물러선 채 비판적 시각으로 내용을 조감하는 장점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미군에 의하여 우리는 해방을 맞이하였다고. 절반의 진실이 담긴 사고다. 그렇다면 미군 진주 이후 및 군정 당시 그네들의 정책이 당시 민중들의 염원에 어긋났던 연유는 무엇일까 자문해야 한다.
"포고문을 통해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성격으로서는 먼저 미군은 한국인이 기대하고 또 생각했던 것과 같은 해방군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보다는 오히려 점령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P.41)
"한국은 일본제국의 일부로서 우리의 적국이다...그리고 적어도 초기에 있어서의 대한점령정책은 일본의 행정기관을 통하여 실시할 필요가 있다." (P.479)
미군은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이 땅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조선은 적지에 불과하다. 이 점을 유념하면 미국이 왜 일본 통치체제를 가능한 한 그대로 잔존시키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건국준비위원회를 배격하고 임시정부를 무시했는지도. 자고로 파트너를 인정한다면 무주공산이 아닌 법.
미군정은 극좌를 탄압하였다. 당연한 일이다. 공산세력은 정권 쟁취를 위하여 사회 불안을 조성하므로. 또한 그들은 극우도 배격하였다. 하지가 이승만을 매우 싫어하였음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좌우합작운동을 후원하였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 그래서 진덕규는 이렇게 평가한다.
"한국의 민주화라는 미군정의 최대의 목표는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대결에로 유도시켰으며, 한반도의 통일은 당시의 냉전체제에 의해서 오히려 분단의 심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정계의 좌우합작은 미군정 당국자의 미숙한 정치적 행위에 의해서 진정한 의미의 좌우통합의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정치적 활동기반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다주고 말았다." (P.46)
남북분단의 시원 유래에 대하여 미국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그들은 군사적, 정치적 완충지대로 한반도를 선택하였다.
"한반도 분할의 최초의 발상도 미국에 의해서 행해졌고, 한반도 분할의 고착화도 미국에 의해서 추구되었던 것이다." (P.47)
그렇다고 분단에 대해 무조건 외세에 귀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해방 후 자주적으로 통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수차에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정치인들 중 일부는 권력획득이라는 소승적 시각에 갇혀 있었고 정치적 포용성도 갖고 있지 못했다. 흉탄에 쓰러져간 대표적인 지도자들의 면면을 떠올려보라.
오늘날에도 친일파의 잔재는 여전하다. 어쩌면 분단 체제가 과거 청산의 실패 결과 중 하나라고 볼 때 진정한 청산은 분단체제의 극복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을 듯하다. 미군의 행정편의주의에 입각하여 시행되었던 일제 관리체제의 유지가 이러한 독소를 깊이 퍼뜨린 것이다.
"미군정은 공산주의를 억제했으면서도 실제로는 공산주의가 파급될 수 있는 소지를 조성시켜주는 역설적인 현상을 나타내고 말았다." (P.51)
거기에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반민족세력이 이를 교묘히 악용하였다. 오늘날 소위 뉴라이트에서는 이승만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승만은 영원히 민족의 죄인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오익환)'를 읽어보면 그가 무슨 죄악을 저질렀는지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자칭 정통 야당의 대명사인 민주당도 과거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민주당의 창설자들이 누구인가? 처음에는 이승만과 야합하여 기득권을 유지하였던 친일파와 지주세력의 연합체다. 그들이 후에 이승만과 사이가 갈라져서 야당화했을 뿐 만약 이승만이 고분고분한 허수아비였다면 그들은 결단코 집권당의 달콤함을 즐겼을 것이다.
따라서 진덕규는 미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미군정의 통치가 보여준 비효율성과 이데올로기적인 편협성, 그리고 권력구조 충원의 보수성은 한국정치의 민족주의적 측면에서는 비판의 중요한 대상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 같다." (P.56)
개인적으로 여운형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증폭되었다. 당시에는 이승만 등이 극우파, 김규식이 중도우파, 여운형이 중도좌파, 박헌영이 극좌파로 대별되었다고 한다. 21세기의 현시점에 정상적으로 존속하는 체제는 좌나 우를 막론하고 중도세력이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는 중도파가 중심을 이루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지녔다.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통하지 않지만 여운형 주도의 건준이 미군에 의해 인정받거나 또는 김규식과의 합작운동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어떠하였을까?
친일파의 숙청과 아울러 북한에 비해 약점의 하나가 바로 토(농)지개혁의 실패라고 하겠다. 유인호는 "누구를 위한 농지개혁인가"하고 반문한다(P.442). 그 대답은 다음과 같다.
"토지소유의 봉건적 지배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그들의 지위를 보장할 수 있었던 지주계층의 이익을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견해에 주도되어 실시된 것이 우리나라 농지개혁이다. (P.462)
'우리나라 농지개혁의 농민부재성은 농지개혁의 원칙설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업시행과정의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관철되어 있는 기본적 특성이다." (P.466)
이상과 같은 논의의 바탕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분단의 경험 30년은 우리에게 분단의 극복이야말로 무엇보다 시급한 최우선의 민족사적 과제이며 이 과제의 성취 없이는 그 어떠한 발전도 번영도 언제나 일시적이고 부분적일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가르쳐준다." (P.552)
금강산 관광객에 대한 총격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냉랭한 작금이다. 우리는 여전히 1945년의 주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이 책에게 여전히 일독할 가치를 부여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