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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도시 ㅣ 까치글방 177
야콥 단코나 지음, 데이비드 셀번 영문 편역, 오성환 외 옮김 / 까치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한 이탈리아 출신 유대인 상인이 마르코 폴로보다 3년 앞서 중국을 방문하고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기록은 수백년간 비밀리에 보관되어 오다가 원본 및 보관자는 비밀로 한다는 조건하에 마침내 공개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여전히 진위 여부를 의심하고 있다.
이만하면 꽤나 흥미진진한 저작이 아닐 수 없다. 내용 자체가 보잘 것 없다면 위작 여부가 딱히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두툼한 분량의 이 책은 흔해빠진 여행기는 아니다. 무역을 위해 이탈리아의 안코나에서 육로와 해상을 통해 중국의 짜이툰까지 오간 여정 중에서 상당 부분은 야콥이 짜이툰에 체류하면서 보고 듣고 겪게 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나마도 그가 짜이툰의 미래에 대하여 개인과 사회질서, 윤리 등에 대하여 중국의 학자 및 상인과 토론하는 내용이어서 뭔가 이국적인 것을 기대하는 이는 실망할 것이다.
13세기 중국에서 유대인 상인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민감한 사안도 포함하여 열성적인 토론을 거듭하는 장면은 이채롭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대적인 점에서 오늘날과 차이를 찾기 어렵다. 그 때문에 오히려 진실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정말로 위작이라면 이는 비난할 사항이 아니라 오히려 편역자 데이비드 셀던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야콥은 독실한 유대인으로 철저한 계율 준수와 회개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성인에 필적하는 믿음과 굳건함으로 태산같은 위엄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곳곳에 인간적 나약함을 보여주는 대목이 등장한다. 50의 나이를 감안하면 의외의 장면이다.
"과거에 당한 불운이 생각나서 나는 다시 슬픔이 복받쳐올랐다...경전 연구를 잠시 제쳐둘 정도로 마음이 무거워져 또 울기 시작했다." (P.44)
곳곳에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지만, 야콥의 주요 토론자이며 그를 높이 평가한 빠이따오꾸는 구시대의 질서를 대변하는 양반이다. 그의 발언을 통해 당시 사대부 계층의 도덕적 기준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에 따르면 상업이 득세하며 도덕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황제 중심의 통치 체제를 새옵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각 계층이 자신의 직분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당에서 빠이따오꾸와 상인들이 벌이는 논쟁(P.262~265)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대한 첨예한 대립적 시각과 유사하다. 상인들은 극단적 자유방임을 주장하며 개인과 사회의 일체의 의무 부과에 반대한다.
한편 젊은 지식인 안훵산과 야콥의 토론은 또다른 흥미를 제공한다. 종교적, 전통적 가치관을 고수하고 대변하는 야콥, 현대적 가치관을 지향하는 안훵산. 야콥은 그를 '나의 적'으로 지칭한다. 그만큼 강력함을 반증한다고나 할까. 그들의 견해는 아동교육론에서 의무교육과 자유교육으로, 형벌의 의의에 대한 처벌론과 교화론으로 대립된다. 솔직히 요즘의 시각에서는 안훵산의 주장이 시대를 초월한 신선함을 안겨준다. 그것이 야콥에게는 더욱 신경쓰인 모양이다.
그리고 유대인과 기독교인, 사라센인의 관계에 대한 야콥의 설명은 그 반목의 깊이와 뿌리가 얼만 깊은 지를 웅변한다. 유대인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역사는 이슬람교에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야콥 자신도 사라센인보다는 기독교도에 더한 적대감을 표출한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현실과 대조되는 사실에 역사적 아이러니가 표출된다.
야콥은 겸손한 유대교도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전투적이라고 표현함이 적합하다. 중국 학자들, 상인들과의 불꽃튀는 토론, 기독교 사제와의 격한 논쟁을 보자. 게다가 그는 상인의 직분을 넘어서는 과욕을 부린다. 즉 도시의 고문관이 되고자 한 것이다.
"지금 암흑속에 놓인 빛의 도시에 진리와 지혜를 일깨워주려던 내 노력이 사람들 앞에서 무참히 좌절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P.401)
이러한 그의 오만은 빠이따오꾸와 상인들의 대립을 부추기는 기름 구실을 하게 되었고, 결국 빠이따오꾸의 죽음과 그의 필사의 탈출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가 과연 순수한 도덕적 동기에서 타국의 정치에 관여한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초창기에는 그럴지 몰라도 나중에 그는 중국에서 봉건영주를 꿈꾸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국적 풍광을 담은 여행기로 접근하면 실망하기 딱 좋다. 대신 몽골 침략을 목전에 둔 남송 말기의 무역항 짜이툰 사람들로 대변되는 보편적 인간 군상의 사회적 면모를 되돌아 보는 데는 매우 유용하다.
'빛의 도시'가 사실은 '어둠과 맹목'(P.408)의 도시임을 야콥은 체험과 토론을 통해 현대의 우리들에게 몸소 입증해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