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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 횡단기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땅
윌리엄 랑게비쉐 지음, 박미영 옮김 / 크림슨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타클라마칸을 비록 언저리지만 목도하고 손발로 체험한 이후 사막의 생생한 정경은 더더욱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꿈꾸던 미지의 곳, 오지 탐험에 대한 열망을 탐험기 또는 여행기를 통한 대리 충족으로 만족해야만 함이 못내 아쉽다.
사하라 사막은 아프리카 북부를 차지한 지구 최대의 사막으로 그 면적만도 아프리카의 1/3이나 된다. 이 사하라를 도보로 횡단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요 차량으로 이동하더라도 도로 상태가 여의치 않아 위험천만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한다. 랑게비쉐의 횡단 도전은 알제리에서 남하하여 니제르를 거쳐 서쪽으로 말리, 세네갈을 빠져나가는 노선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서부 사하라에 국한되지만 논쟁은 하지 말자. 어차피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려는 사람도 제정신은 아니요 그 기록을 읽는 이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여행기의 미덕은 기이한 자연과 이국적 풍경 묘사 보다는 여정 속에서 만나는 개인과 사회의 재발견과 성찰에 있다.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가 뛰어난 점은 느릿한 여정 속의 자아 성찰과 마주치는 사람들을 편견을 배제하고 순수한 눈으로 대하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서양인 여행자의 글에는 무의식적으로 우월주의가 스며들기 쉽다.
랑게비쉐도 나름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다. 그는 현직 기자답게 사물과 사람들을 한 발짝 사이를 두고 바라보는 직업적 습관이 배어있다. 자동차로 며칠이면 통과할 그 곳을 400면에 가까운 두터운 글로 채우자면 자연 곁가지로 새는 경우가 많다. 그곳의 사람 개인사 및 지역의 정세를 상세히 기술하는 것을 읽다보면 리포트가 아닌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좀 더 인간적인 체취를 원한다면 2프로 부족할 수도 있다. 반면 사하라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다.
사막이 우리에게 주는 매혹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그것은 절대 고독이다. 처음 눈길을 사로잡은 풍경도 곧 단조로움으로 다가오고 생명의 자취가 끊어진 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내면을 응시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완벽한 고독과 황폐함은 사람들에게 귀중한 교훈을 던져준다...사막은 그 부족함으로 귀한 뭔가를 깨우친다."(P.18)
사하라는 남쪽으로 그 기세를 더해가고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생존 영위를 위한 필사의 몸부림을 한다. 얼마 전 신문에서 거대한 차드 호가 이제는 거의 말라붙게 된 위성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이 자연을 조작할 능력은 없으니 자연에 대한 순응이 필요한데, 곤궁에 치일수록 인간의 집착과 탐욕은 적나라한 모양이다. 사하라 국가들, 리비아, 알제리, 니제르, 나이지리아, 말리, 부르키나파소, 모리타니아, 세네갈 등 서부 및 동부 사하라 국가들 중 착실한 운영을 하는 나라를 발견하기 어렵다. 궁핍 속에서 소수의 지배층은 더욱 독점하기 위하여 철과 피를 불사한다.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으로 오랜만에 국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좌파 정권이 집권할 때도 이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파 정권의 좌파 야당 시절에는 흔한 장면이었는데. 역시 정치는 잘 바뀌지 않는다. 어차피 사람이 변하지 않는데 정치이게 요구할 수는 없다. 문제의 원인이 우파 집권인지 아니면 좌파 야당인지 애매하다. 아니면 절묘한 시너지 효과! 당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울 법도 하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들도 집권 시절에 마음껏 권력의 힘을 행사해 보는 건데 하고 말이다. 욱하는 심정을 억누르고 까칠한 상대와 소통을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요즘은 마음에 안 든다고 사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