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최후의 100년 - 문명은 왜 야만에 압도당하였는가
피터 히더 지음, 이순호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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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멸망 원인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지대하였다. 서양사상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제국이 그렇게 어이없이 일개 게르만족에게 무너진 사실에 대해 반응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에드워드 기본은 유명한 저작을 통해 로마의 멸망은 내생적 결함의 누적에 근본적 원인이 있고 외생적 충격은 방아쇠 역할을 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통설로 굳어졌다. <바바리안의 유럽침략> 저자 역시 기본에 동조한다.
 
피터 히더는 당대 로마사 연구의 권위자다. 그는 반론을 편다. 로마제국은 내부적 한계를 내포하였지만 그럼에도 멸망 직전까지도 어느정도는 안정된 사회적 기반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무수히 반복된 게르만족들의 연타에 의하여 제국이 회복될 기회를 놓치고 쇠약해져 멸망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최근의 연구 성과를 유력한 증거로 뒷받침하고 있다.
 
"서로마제국은 분명 수많은 외부 집단들이 제국의 영토에 정착하고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한 결과 멸망한 것이었다."(P.617)
 
"서로마제국은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게르만 사회가 로마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제국의 힘에 대응하고 나섰기 때문에 몰락한 것이다." (P.648)
 
3세기 중반부터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사산조 페르시아에 의해 로마가 큰 곤욕을 치른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페르시아는 일시적으로 결지된 적대 세력이 아니라 로마처럼 강대한 문명국이었다. 그러다보니 이를 상대하기 위해 국력을 기울여야 했고 서부전선 방어가 취약해졌다. 더욱이 강화된 군비와 과도한 징세 등으로 인한 수탈로 로마제국의 경제 사회적 토대는 급격히 취약해졌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즉 그런 어려움에도 로마 농촌의 경제력은 향상되었고 인구도 증가하였다.
 
"결론적으로 과중한 세금에도 불구하고 제정 후기 로마의 농촌지역은 대체로 번영을 누렸다고 말할 수 있다." (P.170)
 
그래서 저자는 "제정 후기 로마는 기본적으로 성공한 국가였다"(P.206)고 평한다. 정치적, 경제적 문제와 국가시스템의 한계에도 "4세기의 로마제국이 붕괴할 조짐은 어디서도 나타나지 않았다"(P.206)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를 로마제국에 대한 예찬론자로 볼 수는 없다. 다음 구절을 보자.
 
"로마제국은 영토만 넓었지 관료체계의 한계로 지주들이 중앙에 세금을 내고 정부군의 보호를 받는, 무력과 정치 담합이 얽히고설키는 지방자치체들의 조합에 지나지 않았다" (P.352)
 
이 얼마나 혹독한 비판인가.
 
여기서 몇 가지 단편적인 사안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싶다.

먼저 저자가 강조한 만족 상위집단의 개념이다. 기본적으로 게르만족은 단합된 정치체제를 형성하지 못한 채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가 훈족의 침입과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몇몇 유력한 상위집단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즉 준국가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말이다. 알라리크의 고트족과 가이세리크의 반달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동양사에서 비수한 사례를 살펴보면 칭기즈칸의 몽골족과 누루하치의 여진족이 그러하다. 로마제국은 고립된 부족들에 대한 통제는 성공했지만 강력한 상위집단들의 만족을 완전히 제압할 능력은 이미 상실하였다.
 
스틸리코에 대한 평가는 양분된다. 그럼에도 스틸리코의 실각 이후 로마사는 그의 능력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반증이 된다. 고트족의 로마 약탈을 상기하자. 이렇게 보면 그는 이미 로마제국 역량의 한계를 인지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게르만족과 공생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선각적 지도자였다.
 
로마제국 붕괴의 도화선이 된 훈족에 대해 저자는 흉노족과 관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수백 년의 시차를 두고 유라시아 초원의 양단을 횡단한다는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하지만 훈족의 등장으로 로마제국의 운명이 뒤바뀌었음은 인정한다. "훈족의 간접적인 영향은 아틸라가 입힌 직접적인 피해보다 제국에 한층 더 치명적이었다."(P.492). 더욱이 훈족 제국의 멸망은 "5세기 중반까지 서로제국의 기반이 되어준 힘의 균형을 깨뜨렸다"(P.519). 훈족의 지배하에 숨죽였던 게르만족들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고 로마에 대한 괴롭힘을 재개하였다. 즉 훈족의 등장으로 로마는 멸망에 이르는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역설적으로 훈족의 퇴장으로 그 속도는 가속화되었다.
 
여기서 서로마가 최후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동로마는 왜 두 손을 놓고 있느냐는 불만이 제기될 수 있다. 이는 무지의 소치임을 저자는 웅변한다. 과거에도 동로마는 서로마의 회복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468년 아프리카의 반달족을 제거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동 원정에 동로마는 거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곡창지대인 아프리카만 회복하면 서로마는 다시금 부활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참담한 실패 후 동로마의 재정도 위태로워졌고 반달족과 타협을 하는 외에 다른 방안이 없게 되었다.
 
여기서 다시 저자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로마는 내적인 한계를 지닌 체제였지만 온갖 위기를 넘기면서도 성공적으로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훈족과 그 침입이 야기한 후의 게르만족들과의 대치 과정에서 국력을 상실하고 끝내 이를 회복하지 못한 채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동조할 지 여부는 독자에게 달려 있다. 그럼에도 파국을 극복할 기회가 결코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측면을 중시하면 역시 내적인 붕괴론을 쉽게 배척하지 못한다.
 
이 책의 가치는 풍부하다. 서로마제국 후기와 멸망에 관한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한 풍성한 읽을거리가 가득하며, 더구나 훈족과 게르만족들에 대한 미지의 사실을 획득하는 좋은 게기가 된다. 파란만장한 로마제국에 대한 관심이 큰 독자라면 일독할 가치는 매우 높다. <로마인이야기>에만 만족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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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4.6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