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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999년 가을에서 2000년 여름까지 자전거 여행기다. 책머리에서 작가는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라고 일성을 외친다. 얼핏 픽 웃음을 자아내는 이 한 마디가 내게는 절대로 엄살이나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자전거 여행 당시 그는 미문을 구사하는 전직 신문기자 출신의 산문작가에 지나지 않았다. 말이 좋아 작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알아주는 이 별로 없는 무명인의 처지다.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사주었는지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그 다음 작품인 <칼의 노래>는 속된 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독자와 평단의 호평을 한 몸에 받고 문학상마저 수상했다. 그리고 다들 잘 아는 바처럼 그는 인기 작가가 되었다. 그것이 불과 1년 만인 2001년의 일이다. 역시 인생사는 새옹지마다. 작가가 앞일을 미리 예측했다면 책머리의 절규는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훨씬 더 비싼 자전거값도 월부로 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칼의 노래>의 예감이 여기 자전거 여행에 나와 있다. 진도대교편,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가 그것이다. 산문작가 김훈에서 소설가 김훈으로의 변환점이 진도에서 드러난다.
김훈의 문체적 특징은 꼭 산문에 적합하다. 천상 산문작가인 셈이다. 그의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 (<현의 노래>는 읽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화장’을 읽어보면 어눌하고 진솔하게 읊조리는 듯 한 어투에 문장에 표현상 변형을 주면서 반복하는 방식의 문체는 다른 작가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속도감 있지 않지만 축축 처지는 감도 없는 뚜벅이 황소걸음. 이는 <자전거여행>에서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나직이 내면으로 울부짖는 목소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심금을 울린다.
이러한 김훈의 특장이 발휘되는 소설적 영역이 생과 사가 교차하는 절대 순간이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은 조국을 난도질하는 적을 한없이 단순하지만 순결한 칼을 휘두른다. 외부의 적은 차라리 상대하기 쉽지만 그 단순성과 순결성을 의심하는 내부의 적은 다루기가 어렵다. 내부의 적을 따르자면 외부의 적을 벨 수 없고 외부의 적을 아니 베면 그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남한산성>은 어떤가. 무력한 주전론과 속터지는 주화론의 평행 대치. 그러는 동안에 식량은 떨어지고 원군은 오지 않는다. 결국 성 안에서 육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성 밖에서 정신의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그런 의미에서 <현의 노래>는 상대적으로 김훈의 스타일에 부합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됨은 지극히 당연하다. 거기에는 생사 갈림길의 팽팽한 대치가 빠져 있을 테니.
무명작가 김훈은 가난하지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김훈이 자전거 풍륜의 페달을 밟고 마음껏 전국의 산하를 누비고, 소박한 민초들의 일상에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아, 자전거 여행. 그것은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한심한 이 몸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한 가닥 로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