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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학의 이해
김성기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04년 3월
평점 :
세계문학전집 완독이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보니 우선 세계문학사의 거시적 흐름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일었다. 개개의 작품을 고립된 개체가 아닌 문학사의 커다란 틀에서 개체군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싶었다. 더불어 세계문학에 대한 인식의 폭과 깊이를 확대하고 싶기도 하였다. 현재 수준은 중고등학교 시절의 상식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세계문학사를 다룬 책들을 찾아보았다. 의외로 거의 없다. 정말로 뜻밖이다. 지역문학사를 다룬 것은 그나마 몇 권이 있으며, 우리문학사도 조동일의 걸출한 '한국문학통사'가 있는데 세계문학사를 쓴다는 것은 광대한 지적 밑받침이 없다면 도전하기 어려운 과제인 듯하다. '세계문학사 작은사전'(가람기획)은 일단 사전에 가까운데다 가까운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재고가 없어 내용 확인이 불가능하고 가격도 비싸 일단 제쳐둔다. 한국문학사의 조동일이 쓴 '세계문학사의 전개'가 있는데 통상적인 수준의 개론서 유형은 아니다. 저자의 고유한 문학사관을 투영하여 세계문학사를 논하려는 시도로 생각된다. 이것이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전부다다. 물론 청소년을 위한 세계문학사가 한 종 있는데, 인터넷 미리보기를 해보니 중학생 정도를 대상으로 한 듯하다.
할 수 없이 도서관을 찾아가보니 몇 종류가 더 있어서 그 중 '서양문학의 이해'(한국외대출판부), '세계문학사'(존 메이시/종로서적), '세계문학사'(정판룡/세계)를 대출하였다. 정판룡 판본은 중국 연변에서 간행한 조선족 교과서로 동서양을 아우르지만 중국이 빠져 있고 사관의 편중이 예상된다. 존 메이시는 오래된 사람이다. 20세기 전반까지의 서양문학 중심이라 현대성과 동서 균형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일단 한국외대출판부 판본으로 먼저 접근하기로 하였다.
필진은 모두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문학과 교수들이다. 저작 의도도 교양과목을 위한 교과서로 삼고자 한다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마땅한 개론서가 없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리스 로마문학, 중세문학, 르네상스 문학, 고전주의 문학, 낭만주의 문학,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문학, 상징주의 문학, 모더니즘 문학, 실존주의 문학,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다. 대체로 시대적 배경을 장의 모두에 소개하고 지역별, 장르별로 죽 훑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중요 작가 및 작품은 별도로 줄거리와 의의를 짧게는 반 페이지에서 길게는 몇 장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문체도 평이하여 일반적 수준의 독자라면 이해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후반부의 실존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을 제외하고는.
이런 유형의 저서는 필자가 여럿이다 보니 그 수준이 균일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러시아문학 전공자는 물론 서양문학사의 개론을 어느 정도까지는 기술할 수 있지만 러시아문학에 비해서 그 정도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매 장마다 문학 용어, 문체, 서술 방식의 차이가 존재하여 일관된 흐름이 부족하다. 더욱이 교정을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무수한 오자의 존재는 눈물겹기 그지없다. 아마도 학기에 맞춰 출판에 급급하다 보니 교정은 건너뛴 듯하다.
그럼에도 일부 유명한 고전에만 편중되었던 인식 기반을 외연적으로 확대하는 데는 상당히 유용하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 비극과 희극은 물론이고 코르네이유, 라신느, 몰리에르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겨 그들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 것만 해도 자못 역할이 크다.
또한 고전에 대한 무조건적 상찬이 아니라 그의 작품성의 한계에 대해서도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는 것은 서양문학에 대한 지적 경도로 인한 맹목적 세뇌를 방지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서양문학을 깊이있게 이해하고자 함은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서양문화에 대한 올바른 관계형성을 위한 동반자적 자세이며,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의 문화에 대한 균형잡힌 재정립을 도모하고자 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기왕 학문 수입이 과도한 서양 편중이라는 발달사적 출발의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것을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되 우리 아닌 것을 내치지 말아야 한다.
세계문학과 우리문학은 공존할 필요가 있다. 문학에 있어 일방적 우월성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고유의 언어에서 벗어나면 시(詩)는 가치의 99%를 상실한다. 소설과 희곡 등도 배경과 구성, 사건만 살아남으니 60% 밖에는 건지지 못한다. 따라서 원서가 아닌 번역본으로 작가의 진정한 미덕을 체감하기란 참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그런 면에서는 우리말로 씌어진 우리문학이 정서적 공감대를 확보하기에 유리하다. 우리는 좀 더 우리문학을 사랑할 책무가 있다. 그것이 '서양문학의 이해'를 읽은 개인적 소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