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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이야기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기간의 프로젝트를 개시한다. 세계문학전집 독파에 나선 것이다. 얼마의 기간이 소요될 지 예측하기 어렵다. 민음사 전집을 기준으로 300권을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다고 하더라도 6년 정도 지나야 할 터인데. 천상 마음을 느긋하게 잡고 시간에 연연하지 않을 수밖에.
목록은 민음사 판본을 기준으로 하고, 대산세계문학전집과 을유세계문학전집, 그리고 펭귄 클래식 북스를 보완하는 것으로 하였다. 개중에는 이미 과거에 한두 번 읽은 작품들도 있겠으나 최근에 읽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번에 새롭게 다시, 아마도 내 생애의 마지막이라는 심경으로 한 장 한 권을 집어들 생각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유명 번역가 이윤기의 역작이다. 원전 번역이 아니라는 약점이 있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오히려 이편이 다가서기 더욱 용이하다. 그래도 원전에 대한 아쉬움은 추후 천병희 번역본을 따로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너무나 친숙하다. 어릴 적 동화를 통해서 그리고 자라서는 각종 서양문화의 직간접적 은유와 인용을 통해서. 그런데 익숙한 만큼 생경한 대목도 적지 않다. 더욱이 뒤엉켜 있는 신들의 족보와 사건들의 계보는 체계있는 이해를 방해한다. 여기에는 신들의 불멸성이 한몫 한다. 예컨대 유피테르가 인간 처녀를 취하여 자식을 낳았는데 자식의 몇 대손 가운데 자색이 뛰어난 처녀를 유피테르의 아들 아폴론이 사랑하는 등.
수년 전에 토마스 불핀치가 정리한 그리스 로마신화 이후 오랜만에 읽다 보니 아하, 이 부분이 그러했구나 무릎을 치게 하는 대목도 나온다. 익히 잘 알고 있는 단어의 어원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경우도 적지 않다. 세상물을 더 먹었다고 과거와는 다른 감흥과 이해를 받는 느낌도 꽤 괜찮다. 이래서 고전은 세대마다 다시 읽힐 필요가 있다는 경구가 나온 것인가.
오비디우스는 로마 제정 초기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작가다. 공화정이 막을 내리고 제정으로 접어드는 시기. 그래서 작가는 위대한 로마와 못지않게 위대한 위정자를 찬양하여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월계수가 된 다프네에게 아폴로가 속삭이는 말 중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카피톨리움으로 기나긴 개선행렬이 지나갈 때...그대는 로마의 장수들과 함께 할 것이다...아우구스투스 궁전 앞에서는 그 문을 지킬 것이며...(P.48~49)"
그리스 시대에 생뚱맞게 로마와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즉 작가는 신화를 통하여 로마의 전통적 신성 권위를 강화하고 아우구스투스를 찬양하는 목적을 숨기지 않는다. 하기사 현대에도 일부 정치적 지도자에 대한 신격화 작업에 신화 조작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므로 이 부분에 관한 한 문명 발전을 주장할 수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들은 인간 못지않게 변덕이 심하고 감정적이다. 그들은 전능한 자신들의 능력을 개인적 원한풀이에 사용하거나 아니면 신들의 능력에 근접하는 뛰어난 자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데 발휘한다. 당시의 인간은 참으로 운명 앞에 불안에 떠는 존재였다. 지금 철부지 어린아이에게 전능한 능력을 부여한다고 생각하면 자못 비스무리하지 않을까.
뭐니뭐니 해도 가장 억울한 사례는 유피테르처럼 여성 편력이 심한 신에게 강제로 몸을 빼앗기고 거기다가 아이까지 낳는 여인이다. 순결을 잃은 것만도 통탄할 일인데 유피테르의 부인신인 유노의 질투로 사람의 모습마저 빼앗기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유노는 분풀이를 하려면 자기 남편한테나 할 것이지 애꿎은 여인들마 족치고 있다.
유피테르에 의해 농락당한 칼리스토는 유노의 분노로 곰으로 변신하여 아들의 창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찰나 패륜을 막기 위한 유피테르의 배려로 모자가 하늘의 별자리로 올라간다.
황소로 둔갑한 유피테르는 에우로파를 취하고, 누이를 찾아 나선 카드모스는 신탁을 받아 도시를 건설하는데 그것이 테바이(테베)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테바이는 유노에 의해 곤경에 많이 처하게 된다.
신들의 무분별한 행위의 피해자라면 악타이온을 빼놓을 수 없다. 우연히 디아나 여신의 목욕 장면을 보게 된 잘못으로 그는 사슴으로 변신하여 자신의 사냥개에 물어 뜯겨 죽는 처참한 신세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가장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박쿠스와 관련된다. 광란의 박쿠스 축제를 거부하는 테바이의 펜테오스 왕은 광신도가 된 어머니와 이모들의 손에 의해 팔이 잘리고 머리가 부서진다. 그 어머니의 외침("보아라, 우리가 이겼다. 내가 승리했다!")은 전율 그 자체다. 인간의 비이성적 충동의 끔찍함과 광신의 폐해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성적인 국가의 지도자로서 펜테오스 왕의 정책 판단에 어긋나는 선택을 할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신들의 이야기는 사실 신의 가면을 뒤집어 쓴 인간의 이야기다. 인간은 신의 이름을 빌려서 개인과 사회의 숨겨진 충동과 은밀한 행위를 환한 대낮에 꺼내놓는다. 그럼으로써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기본 틀을 형성한다.
신화는 언제나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