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역사 명저 시리즈 1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지음, 박성식 옮김 / 가람기획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기존에 읽었던 수메르 관련 도서와는 접근 방식이 다소 다르다. 즉 이 책은 신화로서의 수메르가 아니라 역사로서의 수메르 문명을 다루고 있다. 피부에 닿지 않는 신들의 이야기 보다는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을 다루고 있으니 훨씬 현실감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 39가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 시대적 차이는 존재하지만 인간의 삶은 어디서나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걱정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학교 공부는 쉽지 않다. 교육적 체벌을 받는 경우도 있다. 촌지는 어떠한가.
 
최초의 양원제, 법전, 의학서, 농업서 등등은 사실과 흥미 유도를 교묘하게 엮은 것이다. 수메르 문명이 인류 최초의 시원 문명이라면 그들이 이룩한 모든 문명 항목은 모두 인류 최초의 것이 될 것이다. 한편 그리스 로마 중심의 교육과 가치관을 지닌 서양인들에게 고대 근동이 문명의 원류임을 예시하는 데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소제목은 달리 없을 것이다.
 
신화를 다룬 점토판이 아니라 문명 속의 인간에 대한 점토판을 중심으로 다루니 그동안 읽었던 책들에서 간과하였던 문명을 이끈 주역인 인간과 사회에 대한 미지의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 점은 참으로 유익하다. 더구나 저자는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직접 점토판 원문 번역본을 읽어보게 함으로써 수천 년 전 조상과 후인을 직접 연결시키는 중대한 체험의 기회를 주고 있다.
 
수메르 문명의 세부에 대해 다시 운운하지는 않겠지만, 이 책의 초판이 1956년에 출판되었고 개정판이 1981년에 나왔음에도 기본 틀은 그대로인 점을 감안하면 나날이 새로운 해석과 발견이 잇따르는 수메르학에서 고전의 자리를 지킴은 사실이지만 내용상 다소간의 진부함을 피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어쨌든 비교적 흥미로운 내용에 비해 저자의 문체에는 다소 불만이다. 처음엔 번역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 역시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수메르 문명의 석학이지만 글쓰기의 대가는 아니다. 따라서 수메르 문명에 대한 입문서로 가볍게 이 책을 집어 든다면 얼마 못가서 실망한 채 내려놓을 우려가 있다. 이 책은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서사문학-인류 최초의 영웅시대’라는 장에서 저자는 “수메르 영웅시대의 존재를 인정한 결과로 우리는 수메르 인들이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첫 번째 정착민들이 아니었고, 문화적으로 그들보다 훨씬 진보된 문명세력이 그 이전에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한 듯하다”(P.292)고 주장하는데 이어지는 내용은 이의 입증이 아니라 추론이 나열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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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3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12.1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