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수메르로 돌아왔다. 중세 페르시아 시인인 사아디의 잠언집 <내 귀에 들리는 사랑의 숲 이야기>를 먼저 읽었지만, 그래도 수메르가 손에 먼저 잡히는 것을 어이하랴.
 
‘길가메쉬 서사시’는 수메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음직하다. 적어도 문학사에서는 말이다.
 
이제 수메르어와 악카드어에서 직역한 번역본을 읽자니 감개가 무량하다. 이것은 뭐라고 할까, 마치 아무것도 덧칠하지 않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생얼을 바라보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생소하면서도 본연의 깨끗함에 마음이 끌린다.
 
1부는 이 서사시를 발견하게 된 경위를 서술하고 있으며, 2부가 본문에 해당한다. 3부와 4부는 이 작품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배경 지식을 전달하는 목적을 품고 있다. 나같이 사전에 수메르 신화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은 이에게는 새삼스럽지 않으나 단번에 덥석 이 책을 펼친 이에게는 이정도 친절을 베푸는 것은 당연하다.
 
최초의 영웅 서사시로서 ‘길가메쉬 서사시’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재론해야 입도 손가락도 아플 따름이다. 길가메쉬는 신과 인간의 자식으로서 그 존재 자체도 신화와 역사의 중간에 걸쳐 있다. 따라서 그의 이야기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신이 등장하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길가메쉬가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이유는 그가 산지기 훔바바(후와와)와 하늘의 황소 구갈안나를 죽였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그는 속임수로 훔바바를 죽일 수 있었고 엔키두의 도움으로 황소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런데 길가메쉬는 영원한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인간의 경계를 넘어 신의 영역을 다녀왔다. 인간으로서 영생을 구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비록 길가메쉬는 실패했지만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길가메쉬는 그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하였다.
 
이 서사시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보고 싶다. 먼저 길가메쉬와 엔키두의 우정이다. 길가메쉬는 우루크의 왕으로 젊은 폭군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사용할 방법을 찾지 못하여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그런 길가메쉬가 힘에서 엔키두에 밀리면서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그들의 우정으로 길가메쉬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다. 그런 엔키두는 단순한 친구 이상을 넘어서는 혈육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만큼 길가메쉬의 상실감은 컸으리라.
 
젊은 길가메쉬는 엔키두의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인간의 회피할 수 없는 숙명과 그 처절한 엄숙함의 의미를 절감한다. 필사적인 영생 추구는 이러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결국 유일하게 영생을 얻은 선조 우트나피쉬팀을 찾아가는데 성공하나 귀환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선물로 구한 회춘의 식물도 뱀에게 뺏겨버린다. (여기서 뱀은 엔키의 현신이라는 해석도 있다. 엔키는 인간의 창조주이지만 영생을 주는 것에 반대하였다. 따라서 길가메쉬가 청춘을 회복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다.)
 
수천 년 전에 씌어진 옛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문체와 표현의 고졸함을 제외한다면 처절한 박진감과 치열함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길가메쉬에게 계속 주목하는 연유 또한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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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31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11.25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