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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벌레인 대왕 | 몰타의 유대인 | 파우스투스 박사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4
크리스토퍼 말로 지음, 강석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2월
평점 :
기독교가 서구의 정통 종교로 자리잡은 이후 예수를 핍박하고 죽음으로 몰고 간 유대인에 대한 서구의 증오와 억압은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 문학 작품에서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지대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인간보다도 재물을 우선시하는 악독함은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단단한 일조를 한 것이다. 물론 사회 정치 방면으로의 진출이 차단당한 상황에서 유대인의 탈출구는 돈벌이와 예능 외에는 별 수가 없으리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의 <몰타의 유대인>은 셰익스피어의 선구자다.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작품이 여기에 자극을 받아 씌어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
유대인 바라바스는 몰타의 거상이다.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라 국제무역을 하는 대규모 상인이다. 그가 재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몰타에 해악을 가져오는 악인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유대인일 뿐이다. 이런 그를 돌이킬 수 없는 악의 사다리를 밟도록 내몬 존재는 결국 기독교인이다. 그의 전 재산을 강탈하고 내쫓은 그에게 남은 것은 악다구니 뿐이다. 총독 페르네즈의 발언은 정의를 가장한 위선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딸 아비게일의 개종은 바라바스에게 한조각 남아있던 인정을 증발시키는 계기가 된다. 아비게일의 유대인과 터키인의 비난 발언(P.289)은 일종의 자기 부정으로 당대의 기독교 독자와 청중의 종교적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상투적 덫이다.
오히려 작가의 날카로운 기독교 비판이 작품 곳곳에 예리한 송곳 끝을 숨기고 있다.
"그래, 그것도 순결한 처녀로. 그것이 가장 가슴 아프군."(P.300). 베르나딘 수사의 탄식은 기독교도로 죽음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자신이 건드릴 사이도 없이 죽는 꽃에 대한 아쉬움의 반영이다.
또한 바라바스의 발언은 어떠한가. "매년 임신을 하고서도 끄떡 없이 살았으니 말이야"(P.301).
따라서 이 작품은 유대인의 사악성을 그린 작품이 아니다. 역으로 부패한 종교적 편향의 가치관에 의해 보통의 유대인이 악으로 내몰리는 비가역적 과정을 그렸다고 보는 게 옳다. 그래서 바라바스는 죽는 순간까지도 회개하지 않고(당시의 통념에 따르면 신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함에도) 오히려 저주를 퍼붓는다.
<탬벌레인 대왕>과 비교해 보면 구성의 극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전자는 주인공의 승승장구와 적들의 패배와 나락을 대비하며 상대적으로 주인공은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는 등 대체로 평면적이다. 후자는 주인공의 굴곡진 삶과 어울릴 수 없는 가치관의 충돌, 그리고 주인공의 극적인 죽음 등 역동적 성향을 보인다. 또한 대사에서도 전자는 수사적인 고전적 화려체인 반면 후자는 현실적, 직접적인 대사 전달을 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희곡 작품으로서의 기본적 충실성과 적합성에서 <몰타의 유대인>을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