탬벌레인 대왕 | 몰타의 유대인 | 파우스투스 박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4
크리스토퍼 말로 지음, 강석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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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 배경
 
탬벌레인 대왕은 티무르 제국의 창건자 티무르를 모델로 삼고 있다. 티무르를 서구에서는 태멀레인(Tamerlane)으로 불렀다고 한다. 탬벌레인의 지칠 줄 모르는 정복욕 또한 티무르를 닮았다. 티무르는 중앙아시아(탬벌레인은 자신의 고향이 사마르칸트라고 밝힌다)에서 세력을 일으켜 남으로 페르시아와 인도 북부를 점령하고 서로 오스만투르크를 격파한다. 한편 신의 분노이자 응징이라고 몽골군을 지칭하는 표현을 빌려 사용하기도 하였다.
 
2. 줄거리
 
극의 전체적 줄거리는 이러한 티무르의 정복 순서를 유사하게 좇고 있다.
1부는 탬벌레인이 페르시아와 투르크 및 이집트, 아라비아 연합군을 격파하고 한편 제노크라테를 잡아서 마음을 얻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2부는 투르크의 잔존 세력이 기독교 국가들과 연합하려다 배신당하고 탬벌레인에게 전멸당하며 이때 제노크라테가 병사한다. 탬벌레인은 바빌론을 정복하고 투르크 황제의 아들이 이끄는 또다른 도전 세력을 물리친 후 역시 병사한다.
 
3. 르네상스인으로서 탬벌레인
 
중세의 종교적 억압에 시달리던 서구인들이 점차 인간 개성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 르네상스는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종교적 가치관과 자유의 발산이라는 상반되는 가치관이 대립, 충돌하게 된다. 이 작품에 무수히 등장하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교적 관습호칭에 대하여 작가는 탬벌레인과 다른 인물의 대사를 빌려서 혹독히 비판한다.
 
 "신도 왕보다는 영광스럽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이 하늘에서 누리는 즐거움을 지상에서 왕이 누리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P.47, 테리다마스)
 
동맹을 약속해 놓고 배신한 기독교국들에 대한 오르카네스의 비난(P.146~147)은 또 어떠한가. 게다가 병에 걸린 탬벌레인은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신들과 맞서 싸워서 신들의 죽음을 알리겠다는 대담한 발언(P.216)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코란을 불태우며 마호메트를 조롱하는 탬벌레인의 대사(P.209~210)를 통하여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고 있지만, 신학 공부를 하였던 그가 무신론자로 고발당하는 것은 작품에서의 이런 배경 탓이다.
 
그럼에도 탬벌레인은 개인 욕망의 철저한 추구와 지칠 줄 모르는 집념(탐욕으로도 볼 수 있다)으로 중세의 나약하고 소극적인 인간성의 껍질을 깨부수고 있다.
르네상스적 인간 정신은 왕성한 호기심과 욕심에 연원을 둔다. 그것이 대항해시대를 촉발한 원동력이고 여전히 세계에 우위를 차지하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 탬벌레인은 양치기에서 출발하여 아시아, 아프리카, 인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아들에게 세계지도를 펼치며 나머지 지역을 모두 아우르라고 주문한다. 일직선으로 앞으로 내달리는 선형적 사고는 뿌리가 깊다.
 
4. 작품의 특성
 
셰익스피어 당대의 연극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자면 지나칠 만큼 화려하고 수사적이며 장황한 대사를 특징으로 한다. 야만인으로 폄하되는 탬벌레인의 대사를 보면 웅변을 장기로 하는 로마제국의 내로라하는 연설가와 철학자들에 못지않다.
각 부가 100여면 남짓, 그리 길다고 할 수 없으나 각 부마다 숨쉴 틈 없는 사건의 전개가 이어져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장편소설을 단편으로, 대하소설을 단권의 장편으로 압축시켰다고 할까, 따라서 보다 철저한 성격 탐구와 집중 및 사건의 세밀한 구성은 건너뛰고 있다.
 
5. 기타
 
탬벌레인의 제노크라테에 대한 사랑은 비록 폭력적인 수단으로 시작되었으나 종시에는 지고지순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제노크라테가 탬벌레인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된 것도 단순한 위협이나 영웅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그의 순전한 애정을 발견해서였다. 이는 야만인 탬벌레인으로서는 특이한 면모지만 이를 통해 작가는 탬벌레인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음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한편 탬벌레인의 장남 칼리파스는 부정적 성격의 인물이다. 언뜻 보면 폭력과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애호하는 듯 보이나, 실상 그는 나약하고 비겁하다. 그는 편하고 안전하게 왕위를 물려받아 여색에 빠져들 공상을 하면서도 이러한 자신을 스스로 지혜롭다고 착각한다. 전시에서는 장자 상속보다 적자 상속이 대세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무지를 범한 것이다.
 
* 등장인물 중 나톨리아의 왕 오르카네스가 있는데, 나톨리아라는 지명이 당최 짐작이 가지 않아 확인해 보았다. 명확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오늘날의 터키가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 또는 고원을 가리키는 이름을 변용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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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3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10.3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