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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날개 ㅣ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 시리즈 9
고트프리트 켈러 지음, 권영경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8년 7월
평점 :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 시리즈 009
작품집 <젤트빌라 사람들>에 수록된 ‘옷이 날개’와 ‘고양이 슈피겔’의 번역본이다. 다른 책에 비해서 두 편을 수록해서인지 문고판이지만 그래도 볼륨감이 있다.
이 두 작품의 두드러진 특성은 바로 동화라는 데 있다. ‘고양이 슈피겔’이야 부제로 동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옷이 날개’도 이야기 속성 자체가 이미 동화에 가깝다.
한 가난한 재단사가 입은 옷 덕분에 우연히 귀족으로 오인 받고 아름다운 아가씨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비단 이 작품 외에 이따금 볼 수 있는 소재이다. 물론 귀족이 된 재단사를 둘러싼 주위의 에피소드를 유쾌한 필치로 묘사하는 것도 잊지 않지만, 켈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재단사의 내적 갈등과 신분 폭로 이후 남녀의 진실한 사랑의 전개를 그리고 있다.
“영주가 아무 노고 없이 봉토와 봉신을 얻고, 신부가 아무런 신념 없이 교회에서 설교를 하며...자만심에 빠진 선생이 학문적인 연마를 통한 최소한의 지식도 쌓지 않고 조그만 후원도 하지 않으면서 숭고한 교직의 명성과 이익만 누린다면...이들 모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울지 않는다...하지만 우리의 재단사는 너무도 괴로워하며 울고 있었다.” (P.62)
한편 당대 시민사회의 결혼과 관련된 법적 견해를 엿볼 수 있는데, 성인이 된 여성은 자유의사에 따라 결혼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봉건적 관습에 지배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며, 동시대 및 그 이후의 우리네 관습과 비교해 볼만하다.
“아버지인 시의원에게는, 딸의 자유는 법적으로 분명히 보장된 것이므로, 모든 강제적인 행위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P.84)
‘고양이 슈피겔’은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진지한 동화이다. 슈피겔은 시민으로서의 고귀한 덕성을 모두 갖춘 고양이지만 주인 노파가 죽은 이후 기아와 냉대에 시달려 그 덕성을 상실해 간다.
“슈피겔은 먹잇감에 온 신경을 기울지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갔다. 그 일에 몰두하느라 자신의 도덕성을 갖추는 것조차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얼마 되지 않아 예전의 사색적인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P.95)
그래서 마법사 피나이스와 목숨을 담보로 한 계약에 동의하였다. 이는 언뜻 파우스트 박사와 메피스토펠레스 간에 이루어진 계약을 상기시킨다. 한편이 청춘과 영혼의 교환이라면, 여기서는 배부름과 목숨의 주고받음이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다.
이 소품의 압권은 슈피겔의 재치로 결합하게 된 마법사 피나이스와 마녀에게 있다. 악이 더 큰 악에 지배당하는 광경을 여기서 보게 되니 마법사에게 동정이 가게 되기조차 한다.
이 책이 다른 <젤트빌라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성은 유려한 번역에 있다. 동화책을 읽듯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흐름은 ‘이야기’로서의 노벨레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제 고트프리트 켈러의 <젤트빌라 사람들> 국내 번역본도 마지막이다. <초록의 하인리히> 이후 켈러에 오래 매진하였다. 다만 서구에서 그의 명성과 가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존재감은 너무 희박하다. 편견과 편향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잃지 않는 것, 나 뿐만 아니라 타인의 소중함을 인정하는 것, 사고와 행동의 정당한 가치를 평가하고 걸맞은 대접을 하는 것, 이것은 비단 문학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서 부족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