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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평점 :
위태위태하다. 그리고 처절하다.
한강의 신작 장편소설을 읽으며 연상되는 단어가 이러하다. 한강은 예술과 통속의 절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아슬아슬함을 자아내는 감각적 즐거움이 그의 작품에서 물씬 배어나온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의 감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출발은 평범하다. 전개는 무난하다...결말은 상궤를 벗어나 참혹하다.
화가 서인주의 죽음과 강석원의 글에 대하여 작중 ‘나’인 이정희의 심경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누구보다도 서인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다고 내적으로 자신하였던 나, 따라서 강석원에게 딱 부러지게 응대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녀와 서인주의 삼촌 간에는 남모를 추억이 배어있지 아니한가. 그래서 그녀가 몰랐던 서인주에 대한 다른 사실을 접하였을 때 반응은 한마디로 상실감이었다.
“입술을 악물었다...모든 것을 잃은 걸 같았다. 모든 것에 굴복한 것 같았다. 모든 것에 버림받은 것 같았다.” (P.149)
그리고 ‘나’는 서인주의 자살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고 강석원의 책에 반박하기 위하여 서인주와 관계된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친우 인주의 숨겨진 과거. 따라서 일부 평자의 말대로 탐정소설의 성향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문득 궁금하다. ‘나’와 서인주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끈끈했기에 그토록 필사적으로 인주의 마지막과 죽음에 몰입하고 있는지를. 통상적인 절친한 교우의 수준에서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지 자신의 일상을 중단하면서 이미 죽은 이를 위하여 타인의 생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상례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나’는 그토록 깊숙한 관계를 서인주와 맺고 있었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나’의 심리적 소유욕과 자신감에 상처와 배반감으로 함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나는 인주를 몰랐다.
인주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
인주는 나에게 한번도 어머니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삼촌에 대해 인주가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있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P.241)
소설은 ‘나’의 현재 상황과 ‘나’와 서인주의 과거가 교차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나’의 힘겨운 노력의 정당성을 지지하게끔 유도한다. 한편 서인주의 삼촌의 죽음, 인주의 부상, 그리고 화가로의 전이 등을 통해 서인주의 삶이 결코 안온하고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조금씩 독자에게 비쳐준다. 감질날 정도로 조금씩, 그리고 독자가 다가올 사건 전개를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단편적으로.
상류와 중류의 거칠고 굴곡진 흐름을 마친 강물이 보다 느릿하고 유유한 하류로 흐르리라 생각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급류와 암초가 난무하는 협곡을 만나면 모두들 당황하게 된다. 한강이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결말이 꼭 그러하다.
우연과 필연으로 만나게 된 상담소장과의 조우. 그리고 그로부터 알게 된 서인주의 어머니와 상담소장 자신, 그리고 그들이 학생시절 가르치던 과외학생과의 천길 낭떠러지 위의 병적인 관능의 죽음에 이르는 일탈.
작가는 서인주의 죽음이 자살인지 아니면 명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것은 자살일 수도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암시와 함께.
오히려 이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강석원의 행동은 서인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의 근원에 철저히 회귀하도록 하는 매개체의 역할이었다. 사십년 전 진수 학생과 상담소장의 불완전한 마무리를 그는 깔끔하게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하나의 신화로 부활하여 영생시키려고 한다. 따라서 이를 가로막는 ‘나’의 존재와 행위를 그는 용납할 수 없다. 그 아니면 ‘나’ 둘 중에 하나는 살아남을 수 없다. 나는 머리 속으로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는 머리 밖에서 실제로 ‘나’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것이 둘의 차이점이다. 그래서 독자는 강석원을 증오할 수 없다. ‘나’의 처지에 전적으로 동정하지 않는다.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면서 우울한 상념에 빠져든다. 한강의 글쓰기 양식이 원래 이러한가. 극한의 상황으로 인물과 독자를 몰고 가는 것. 물론 절대 극한에서 인간은 솔직하고 겸허해지며, 여기서 종교가 비로소 탄생한다.
그런데 꼭 이렇게 백천간두에서 외줄타기를 해야만 할까. 병적인 집착이 그의 주인공의 트레이드마크임은 섣부른 속단일 수 있겠으나 자꾸만 뇌리에서 맴도는지.. 정녕 알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