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르 폰타네 연구
김영주 지음 / 삼영사 / 1989년 3월
평점 :
품절


폰타네의 두 작품 <마틸데 뫼링>과 <에피 브리스트>를 읽어보았다. 20편에 가까운 장편 중 단지 두 편(번역본은 이게 전부이므로)만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추론한다는 것이 섣부르지 않은가 의문스러웠다. 특히 <에피 브리스트>를 통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아울러 그가 과연 어느 정도의 문학사상 평가를 받는 작가인가도 궁금하였다.

이런저런 궁금증의 해소하기 위하여 작가론을 펼치게 되었는데, 김영주는 <에피 브리스트>의 번역자이기도 하니 잘 된 셈이다. 이 책이 1989편에 간행되었으므로 그는 20년 이상 테오도르 폰타네 연구에 헌신하고 있는 셈이다. 이 연구서는 초년 시절의 것이므로 현재의 저자 견해와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폰타네의 기본적 개념에 접근하는 것이므로 충분하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저자는 폰타네의 주요한 여성소설 네 편(<얽힘과 섥힘>, <에피 브리스트>, <예니 트라이벨 부인>, <슈테힐린>)의 주인공을 통해 사회비판적 역할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폰타네의 소설을 단순 여성소설로 간주하면 개인의 불행사로 이해하면 족하지만, 관습과 제도에 의하여 억눌린 소수자의 것으로 이해한다면 사회비판적 의의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에피 브리스트>를 제외한 세 편은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이므로 저자의 내용 소개와 분석에 따라 작품의 대강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참고가 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얽힘과 섥힘>은 구신분제도의 모순을 비판하여 시민계급의 여성 레네와 귀족계급의 남성 보토는 사랑하면서도 신분제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각각 자신들의 신분에 맞는 배우자를 고른다. <에피 브리스트>에서는 귀족사회를 억누르는 구 사회규범의 해악을 비판한다. 자연의 대변자 에피는 사회의 대변자 인스테텐과 결혼하나 가정을 지배하는 사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일탈하여 파멸한다. <예니 트라이벨 부인>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하면서 귀족계급에 필적하게 부상한 신흥 부르조아 사회의 이중적 또는 기만적 가치관을 비판하고 있다. 예니는 고상하고 순수한 척 행동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가난한 시민계급 여성과 결혼하려 하자 그 위선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탐욕스러운 부르조아의 실체를 드러낸다. <슈테힐린>의 멜루지네는 신질서와 구질서의 균형을 추구하며 일방의 급격한 지배가 아닌 점진적 사회 변화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노년의 폰타네의 사상과 가치관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나마 <에피 브리스트>가 익숙한 작품이므로 저자의 견해와 내 자신의 판단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어서 작품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폰타네의 작풍은 온유하고 체념적이다. 위의 작품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들의 행동은 소극적이다. 그들은 사회의 모순에 반발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도전하기를 포기하고 수용한다. 그것은 인간 자체가 약한 존재라는 인식에서이다.
“폰타네 문학에서 인간은 자신이 속한 사회현실 속에서 사랑을 체념하여 행복을 포기하거나, 삶을 희생당하는 비극적 운명을 겪는다.”(P.12~13)
"폰타네의 비영웅적인 주인공들이 사회와 개인의 불균등한 투쟁에서 그 싸움을 피하고 있다...“(P.54)
“폰타네는 인간의 내면이 전승되어 온 사회질서를 혁파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우기에는 그 스스로 유약함을 통찰하였기 때문이다.”(P.56)

에피와 인스테텐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해서 저자 및 이전의 비평가들은 결혼을 통해서 에피에게 사회가 처음으로 출현하였음을 지적하며, 사회의 대변자 인스테텐과의 결합은 곧 파멸에의 첫걸음을 의미한다고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에피는 개인의 대변자이고 인스테텐은 사회의 대변자이므로 에피에게 구혼한 것은 에피에게 사회가 출현함을 의미한다.”(P.71)
“에피에게 있어서 인스테텐과의 결혼은 사회에 희생당하는 에피의 삶의 도정에서 처음으로 사회와 대면하게 된 사건인 것이다. 인스테텐의 출현 자체가 에피에게는 삶을 파멸로 몰고 가게 될 사회에의 첫 걸음을 의미한다...”(P.76)

한마디로 인스테텐과 에피는 잘못된 만남이라는 것이다. 계속된 분석에서는 인스테텐은 가해자, 에피는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시각이 매우 농후하다. 여기서 지난세기 초부터 몰아닥친 전투적 페미니즘의 폐해를 찾게된다.

에피의 가해자는 사회 또는 계급이다. 인스테텐도 에피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에피와 인스테텐의 삶은 당대의 억압적 사회규범에 의해 파멸당하였다. 그런데 분석에서는 인스테텐 개인의 가해자로 취급한다. 인스테텐의 사회의 대변자라는 당황스러운 논조이다.

인스테텐과 결혼을 선택한 것은 에피 자신의 선택이다. 물론 부모의 명시적 권유가 있었지만 강요라고 할 수는 없다. 에피는 사랑보다도 지위와 명예를 확보한 인스테텐과의 결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연령차나 애정은 결혼에서 부차적일 수 있다는 것이 당대의 지배적 가치관임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관구장 부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은 본인의 선택의 귀결이므로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적어도 사회성에 관한 한 인스테텐을 홀로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에피와 인스테텐은 모두 사회성을 공유하였으며, 당시 관습에서 볼 때 인스테텐은 모범적이며 충실한 남편상이다. 애정이 가로놓여 있지 않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여러 평자들이 이 작품에 내재한 사회비판적 의미를 언급하고 있다. 에피로 하여금 간통의 죄를 범하게 만든 것은 억압적 사회규범이므로 에피의 탈선은 사회비판의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탈선한 에피에게 비판자의 지위를 부여한다면 탈선하지 않는 유사한 처지의 대다수 부인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에피의 불행은 섣부른 결혼관과 당당한 자아관의 결핍이 빚어낸 작용의 산물일 뿐이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러한 결과를 유발한 구시대적 사회규범이 에피와 인스테텐을 돌아오지 못할 길로 안내하였다는 비판이 보다 적합하다.

뷜러스도르프와 인스테텐의 대화에서 인스테텐은 개인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우월성을 언급한다.
“우리는 단순히 개별적 인간이 아니죠. 우리는 전체에 속해 있어요. 우리는 항상 전체를 고려해야 해요. 우리는 철저히 전체에 의존하고 있어요...”(P.101)

집단가치의 무조건적 수용과 내면화. 이것의 무시무시한 결과가 무엇인지 독일역사, 아니 세계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20세기 독일의 양차 세계대전과 히틀러와 나치의 등장 배경, 그 근원은 이렇게 뿌리 깊다.

즉 폰타네는 <에피 브리스트>를 통해 억압적 사회규범이 개인의 가치관에 미치는 깊숙한 영향력과, 그것이 선량한 에피와 인스테텐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과정과 결말을 독자에게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자연적 정의란 무엇인가를 반추하도록 하고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근대나무 2011-08-2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10.9.3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