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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십팔사략 세트 - 전10권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만화는 개인적으로 열광도 무관심도 아닌 중간적 애호가의 수준이다. 만화의 재미성을 인정하지만 목적성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물론 <열혈강호>의 희로애락에 푹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만화 조선왕조실록>을 조금 보면서 어쩌면 만화가 딱딱한 분야의 접근을 위한 부분적 보완재의 구실을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되었다.
만화가 고우영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그의 작품을 본 적은 없다. 더욱이 그가 이미 고인이라는 사실마저도. 솔직히 누가 빌려주던가 아니면 이번처럼 반값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이 만화책을 볼 가능성을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중국 역사를 어려워하는 이도 많다. 삼국지 등을 통해서 단편적으로는 알지만 개괄적 걸개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중국 역사는 단편적 사실들의 무차별적 나열에 불과하여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그런 면에서 ‘십팔사략’이라는 책의 가치가 높이 평가받는 것이며, <만화 십팔사략>도 미덕을 상실하지 않는다.
중국 상고시대부터 남송의 멸망까지 방대한 시기를 다루고 있으므로 몇 권의 책으로 속속들이 심도 깊은 역사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커다란 흐름을 깨우치도록 하며 도중의 중요한 사건이나 일화 소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일찍부터 역사에 관심이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관련 서적들을 -물론 번역본으로- 보았다. <서경>, 사마천의 <사기> 전집, 사마광의 <자치통감> 처음 몇 권 등 역사서를 포함하여,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등 역사소설류. 특히 <삼국지>는 다른 번역본을 수차례, 고에이 컴퓨터게임 등을 섭렵하였다.
따라서 이 만화책 세트를 통해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심심파적 삼아 간만에 중국사를 통사적으로 훑어보자는 심정뿐. 그럼에도 남북조 시대는 역사서에서 상세히 다루지 않는 부분이므로 이 책을 통해서 그 정신없음과 잔혹성을 여실히 알게 되었다. 당대는 말할 것도 없고 과거에도 사람 목숨은 여전히 파리 목숨이며, 권력욕 앞에서 부자, 부부, 형제 간의 정리는 진부한 도덕률이다.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 일단 초등학생은 제외하자, 어쨌든 기본적 이해력과 인식수준을 사전에 요구하므로. 내용에 다소간 선정성과 폭력성이 반영되어 있으므로 망설이면서 중학생 정도 이상이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내용의 방대함에 연유하는지 작가는 큰 줄기를 쫓아가기에 바쁘다. 역사의 주인공은 역사 그 자체이다. 그 안에 명멸을 거듭하는 수많은 영웅과 인간 군상을 역사를 드러내는 부품과 배경 역할에 불과하다. 작가의 유머와 해학은 등장인물 각각을 뚜렷이 구별되게 하는 놀라운 차별성을 보여주지만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보고 읽는 <만화 삼국지>와는 분명히 다르다.
만화 형식을 통한 충실한 중국사 이해가 주목적이라면, 이 책은 매우 좋은 입문서다. 하지만 작가 고우영의 창의성과 체취를 짙게 느껴보고 싶은 독자라면 다소 밋밋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장일단은 존재한다. 다만 독자의 선택일 뿐이다. 나라면 어떨까? 지하철 통근하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는 정도면 충분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