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의 연인 밀레니엄 북스 45
알퐁스 드 라마르틴 지음, 김인환 옮김 / 신원문화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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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출의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프란츠 리스트는 서양 고전음악사에서 이른바 ‘교향시’의 창시자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는 10여 편의 교향시를 남겼는데 그 중 제3번 <전주곡>은 동 분야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칭송받는다. 리스트는 이 작품을 라마르틴의 <명상시집> 중 한 시의 일부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고 한다. 요지는 인생이란 죽음을 향한 전주곡이라는 것.

작가 라마르틴은 프랑스 낭만주의를 온몸으로 부딪혀나간 시인이다. 그의 인생에서 젊은 시절 풀제 호반의 온천지에서 만난 샤를 부인과의 사랑 체험이 없었다면 그의 여러 시와 소설 작품들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정치인 라마르틴으로만 기억될 터.

이 작품 <호반의 연인>은 자신의 체험담을 짙게 풍기고 있다. 읽다 보면 이것이 소설인지 수기(手記)인지 헷갈릴 정도다. 연상의 유부녀와의 사랑. 어찌 보면 비도덕적이고 타락적인 요소가 강한 관계이다. 하지만 라파엘과 주리[줄리]의 사랑은 세속을 초월하여 범인의 이해를 초월하고 있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극치!

이성간에 우정이 불가능하며 애정만이 가능하다면, 에로티시즘을 떠나 완전한 플라토닉한 사랑이 가능할까? 이런 의문에 작가는 라파엘과 주리의 사랑을 대답으로 제시한다. 그들의 사랑의 양태가 예사롭지는 않다.

주리는 라파엘보다 연상이며, 나이 많은 남편도 있다. 저명한 학자인 남편은 주리를 보호해주기 위해 부녀 같은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그러나 젊은 주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녀의 사랑이 아닌 남녀의 사랑. 악화된 건강을 다스리기 위해 요양 온 온천 호반에서 주리가 만난 사람이 라파엘. 주리는 진심으로 라파엘을 사랑하며, 그들의 사랑은 남편도 이해하고 인정한다.

처음부터 둘의 사랑이 육욕을 초월한 것은 아니다. 라파엘은 응당 자연스러운 사랑을 원했으나 주리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욕정을 버리기로 한다. 이러한 종교적 정화 과정(P.95~96)는 문학작품이 아니라 마치 경건한 종교 참회록을 연상시킬 정도다. 그 결과 라파엘은 ‘관능적이고 천한 정욕’을 버리고 ‘신과 그녀가 완전히 하나’가 되는 종교적 행복감을 누린다.(P.99~100) 라파엘의 주리에 대한 사랑과 찬사는 끝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순수한 사랑에 대한 절대적 찬가이다.

한편 주리 또한 라파엘로 인해 크나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만 육신은 나날이 쇠약해진다. 작품 후반부에서는 라파엘에게 건강 우려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쓰는 주리와, 개인과 집안의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지 주리 곁에 머무르려고 애쓰는 라파엘, 이 두 사람의 엇갈린 사랑의 분투가 눈물겹게 펼쳐진다.

연인은 호젓한 둘 만의 공간과 시간을 원한다. 연인 간의 대화를 들어보면 제삼자는 낯간지러울 정도로 사소한 내용이지만 이런 시간과 대화 자체는 연인들의 애정을 강화한다. 마찬가지로 라파엘과 주리가 만나서 하는 행동은 오로지 온갖 소소한 대화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이것은 매우 중차대하며 행복을 자아낸다.

지고의 사랑은 언제나 해피엔딩과 거리가 멀다. 순수는 오염되기 쉬우며 세월의 때를 타기 마련. 연인의 부부 결합은 로맨스에서 일상으로 이끈다. 따라서 가슴 아픈 이별, 특히 사별(死別)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죽음’이다.

오랜만에 사랑과 순수함이 깃든 글을 읽으니 내 마음조차 한없이 가볍고 투명해진다. 이것이 문학의 힘인가. 세상에 참 사랑이 없다고 믿는 이, 티 없이 깨끗한 사랑을 갈망하는 이라면 한번 읽어봄직한 작품이다.


* <호반의 연인>의 원제에 관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표지에도 해설에도 인터넷의 온갖 서적 정보를 다 뒤져 보아도. 최종적으로 출판사 문의(가능성은 낮지만...) 또는 번역자 연결(현직에 있지 않다...)에 앞서 혹시나 하고, 영어 번역본(불어는 모르므로...)으로 가능성이 높은 작품의 본문 내용을 검색해 보다가 마침내 원제가 <라파엘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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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10.9.28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