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딸들
제라르 드 네르발 지음, 이준섭 엮음 / 아르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네르발이 만년에 그의 주요 작품을 집대성한 후 붙인 표제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알렉상드르 뒤마에게
2. 앙젤리끄
3. 실비, 발르와의 추억
4. 제미
5. 옥따비
6. 이시스
7. 꼬리야
8. 에밀리
9. 몽상의 시

<불의 딸들>은 1990년대에 김동규 번역판이 출간된 적이 있으나, 완역본으로는 이것이 처음이다. 비상업적인 작품의 완역에 노력을 기울인 역자에게 충심으로 감사한다.

<불의 딸들>은 <오렐리아> 이전의 그의 작품세계를 결산한다. 소설, 희곡, 서신, 시 등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되는 네르발의 작품세계가 무지개처럼 찬연하게 펼쳐진다. 모성 상실, 사랑과 실패의 추억, 기독교적 가치관에 대한 거부감, 환상과 몽상에의 집착, 그리고 고향 발르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등 작품 속에 내밀하게 표현된 네르발의 다채로운 색채 감상과 분석을 통해서 프리즘을 통과하기 전의 네르발의 종합적이며 근원적인 면모를 그려볼 수 있으면 더욱 기쁠 것이다.

각 수록작의 내용을 간단하게 촌평한다.

<알렉상드르 뒤마에게>는 이 작품집의 머리말에 해당한다. 자신의 정신이상은 예술창작에 무관하며, 오히려 환상과 비이성의 개인적 체험이 자신의 문학에 깊이와 풍요로움을 더할 것이라고 강변한다.

이어지는 작품들의 표제가 모두 여성이름이라는 데 주목하자. 네르발에게 여성은 얼굴도 보지 못한 어머니, 한번 만남으로 영원의 여인이 된 아드리엔느, 그리고 아드리엔느의 아바타인 제니 꼴롱으로 이어진다. 그의 생과 영혼은 상실한 모성과 사랑의 복구에의 갈망으로 목마르다.

<앙젤리끄>는 비소설적 소설이다. 작가는 편집자에게 보내는 서신 형식으로 대혁명 시기의 사제 뷕끄와 백작의 삶과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오리무중인 그의 자취는 곧이어 그의 고모할머니인 앙젤리끄 드 롱그발에게로 작가와 독자의 관심을 안내한다. 정신적으로 과도하게 순진한 백작의 딸 앙젤리끄와 그를 연모하는 푸주한의 아들 라 꼬르비니에르의 사랑과 도주, 그리고 고난과 슬픔의 결혼생활, 라 꼬르비니에르의 죽음 등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진다.

작가는 뷕끄와 사제를 추적하지만 초점은 앙젤리끄에 있다. 앙젤리끄는 네르발의 여인상의 전형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녀의 애정의 일편단심과 헌신성이 현실 여인과의 사랑에 실패한 작가의 구미를 당겼는지 모르겠다. 내게는 그보다도 오히려 작가의 추적 과정에서 독일에서 파리로, 다시 서서히 발르와 지방으로 이동하는 지리적 변화가 흥미롭다. 그의 다음 작품 <실비>에서 본격적으로 산책하는 상리스, 에르므농빌, 루소의 무덤 등의 발르와 지방의 여러 지명이 스와송, 롱그발 등과 함께 처음으로 등장한다. <앙젤리끄>는 <실비>의 전주곡이다.

<실비, 발르와의 추억>은 이미 삼독(三讀)을 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제미>는 신생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언제나 고향 발르와(발루아)를 배회하던 네르발이 훌쩍 대륙을 건너뛴 점으로도 알 수 있듯이 오스트리아 작가의 작품을 번안하였다. 가난하지만 생활력이 투철한 아일랜드계 제미가 독일계 자끄와 결혼하여 충실한 생활을 하던 중, 인디언에 납치당한다. 갖은 고난에도 꿋꿋함을 잃지 않은 제미는 틈을 노려 5년 만에 탈출에 성공하여 꿈에 그리던 집에 돌아왔으나, 남편은 재혼을 하였고 아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갈 곳 없는 그녀는 다시 자신을 납치하였던 인디언 부족에게 돌아가서 자신을 연모하던 추장과 결혼하여 그들을 문명화시킨다.

<옥따비>와 <이시스>는 네르발의 동방여행의 추억과 깊은 관련이 있다. 네르발이 오리엔트 여행 중 머무르던 나폴리에서 겪은 영국여인 옥따비와의 만남을 소재로 나폴리 여인과의 과거 만남을 액자소설 형태로 구성하고 있다. 여인과의 만남과 나폴리 주변의 로마 유적, 특히 이시스 신전의 이교 체험이 <옥따비>, 이시스 여신의 사상과 의례 해설이 <이시스>의 기본 뼈대다. 그리고 두 작품을 잇는 핵심 어구는 ‘이시스’이다.

<꼬리야>는 흥미로운 희극이다. 역시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지만, 여배우 꼬리야를 둘러싼 경쟁자 파비오와 마르셀리 간에 얽힌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어 앞의 작품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이 작품은 네르발 자신의 연애 추억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제니 꼴롱과 꼬리야는 동격의 인물이고, 파비오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파비오의 꼬리야 찬미 대사(P.332)는 제니 꼴롱에 대한 네르발 자신의 예찬에 다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에게 여배우만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파비오를 평하는 꼬리야의 마지막 대사는 제니 꼴롱과 네르발의 결실로 맺지 못한 사랑을 상기해 볼 때 새삼 되새겨봄직하다.

<에밀리>는 다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에밀리가 아니라 전쟁영웅 데로슈 중위이다. 죽음을 무릅쓴 무모한 돌진으로 전사한 데로슈 중위의 행위에 대한 기구한 사연이 뒤얽힌 이야기다. 약혼녀가 자신이 전장에서 총검으로 죽인 독일군 하사관의 딸이라는 것. 곧 결혼하게 될 남자가 아버지를 죽인 철천지원수라는 사실. 이것이 드러난 마당에 사랑과 인륜의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은 데로슈 중위를 자살로 몰고 간다. 작품집에 수록하기 위해 작가가 표제를 수정하여 무리하게 수록한 것이 아닐까 의구심을 갖는다.

<몽상의 시>는 ‘엘 데스디챠도’, ‘미르또’, ‘호루스’, ‘앙떼로스’, ‘델피까’, ‘아르테미스’, ‘감람산의 그리스도’, ‘황금 시’의 8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보헤미아의 작은 성들>에서 한번 읽은 적이 있어 생경하지는 않지만 낯설기는 변함없다. 표제로도 알 수 있듯이 그리스‧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를 제재로 기독교 비판, 이교 정신의 찬양, 현실 탈피, 사랑의 갈구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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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10.11.19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