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딸들
제라르 드 네르발 지음 / 장원 / 1994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네르발의 대표작 <불의 딸들>에서 <실비>, <발르와 지방의 노래와 전설>, <옥따비>, <이지스(이시스)>를 포함하고, 또 다른 대표작 <오렐리아>를 합본하였다. 따라서 <불의 딸들>의 완역본은 아니지만, <오렐리아>를 비롯한 네르발의 주요 작품을 한눈에 조망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실비>는 ‘몽상과 환상’이라는 네르발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실비는 현실이며, 아드리엔느는 이상이다. 네르발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상을 좇는다. 그것이 몽상이라고 할지라도. 아드리엔느의 대체재로 오렐리를 택하지만 그것이 성공할 리 없음은 당연하다. 마지막 장에서 실비와 자신의 젖친구의 결혼 생활을 보면서 네르발은 중얼거린다. “저것이 어쩌면 행복일지도 몰라. 하지만......” 이 혼잣말의 단서구가 네르발의 정신을 대표한다.

<발르와 지방의 노래와 전설>에서 작가는 소박함을 찬양한다. 고대에 대한 찬미도. <실비>의 부제가 ‘발르와의 추억’이며 발르와 지방으로 회귀하는 여로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실비>와 이 작품은 동질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옥따비>는 마르세유와 나폴리에서 만난 한 영국 아가씨와의 우정과 사랑을 몽상적 문체로 그려내면서 여성에 대한 작가의 우유부단한 면을 다시 드러낸다.

<이지스(이시스)>는 네르발의 관심대상인 동방(오리엔트)적 고대의 찬양이다. 여기서 이시스 여신은 작가의 어머니이자 영원한 여인상의 근원이다. “이 구원자이며 성스러운 어머니”(P.142)인 여신은 자신의 상실한 유년 시절과 현재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회복의 기원을 담고 있다.

<오렐리아>는 네르발의 가장 신비스러운 작품으로 평가된다. 정신 발작으로 고생하던 작가의 혼란스러운 정신세계가 반영되어 일견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하지만 작가 자신이 밝혔듯이 내적으로 비논리적인 일관성이 존재함을 작품을 읽어본 이라면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죽음과 사후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전작에서 몽상은 현실과 과거로 향하고 있다. <오렐리아>에서는 꿈을 통해 영혼과 신을 향하고 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듯이.

꿈과 몽상은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난 영역이다. 우리는 밤에 무수한 꿈을 꾼다. 잠에서 깨어나면 꿈의 기억은 희미하고 잊혀지며, 살아남은 편린도 단절되고 비논리적이다. 만약 꿈(또는 몽상)을 그대로 기술한다면 이것이 초현실주의 사조에서 주창하는 자유기술이다. 이런 관점에서 <오렐리아>를 보면 그 독특한 산만과 비논리가 자연스런 흐름으로 이해된다.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운 이 공상을 길들이고, 우리 이성을 농락하는 이 밤의 정령들에게 하나의 규칙을 부과하는 것이 불가능할 일일까?......외부세계와 내부세계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단지 정신의 무관심 내지 혼란으로 인해 그 두 세계 사이의 명백한 관계가 왜곡되는 것 같았다.”(P.250)

아드리엔느와 오렐리아는 그의 영원한 연인, 제니 꼴롱의 아바타이다. 그리고 제니 꼴롱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네르발의 잃어버린 어머니의 현세의 현현이기도 하다. 네르발의 삶과 작품은 모성에 대한 갈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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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10.10.18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파샤 2012-03-25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르발의 작품이 자서전적 성격이 짙다고 해서 아드리앤느나 오렐리아를 제니 콜롱의 분신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어찌 잘못된 네르발의 신화는 아직도 계속되나. 프랑스에서는 70년대로 끝이 났다. 정신분석학이나 신화비평에 너무 의존하면 네르발의 깊은 세계가 너무 제한된다. 작가와 작품이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네르발 자신이 밝힌다고 해서 반드시 둘을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작가의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