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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멘 - 지만지고전천줄 25
프로스페르 메리메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원작으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 흔히 그렇듯 원작과 그 응용작은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응용작이 원작의 충실한 모방이라면 응용작 만의 독자적 개성을 상실하니 의의가 약해진다. 응용작이 제목만 빌려왔을 뿐 원작과 동떨어져 있다면 원작에 대한 배신이다. 따라서 응용작은 언제나 원작과의 관계 설정, 즉 충실성과 고유성의 줄타기에 신경을 써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비제의 카르멘과 메리메의 카르멘의 개성은 분명하다.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생을 꿈꾸는 집시 여인. 하지만 비제는 메리메의 카르멘이 지나치게 악독하다고 여겼음인지 다소 순화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물론 돈 호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는 무대에 올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초연 후 혹독한 비난에 시달렸으니.
아, 카르멘! 그녀를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인형 같은 미모는 아니지만 생명력이 충만하며, 지적이고 고상하지 않지만 야성미가 흘러넘치며 무엇보다도 사람의 혼을 빼앗아가는 마력적인 섹시함을 지니고 있다. 그래야만 순진한 돈 호세가 그녀를 저주하면서도 그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수 있다.
“나는 시달리기를 원치 않으며, 특히 명령을 받는 것은 더욱 싫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자유롭게 살며, 또 마음에 드는 일만을 하는 거예요.” (P.117)
“당신은 나의 롬이니, 당신에게는 당신의 로미를 죽일 권한이 있어요. 그러나 까르멘은 언제까지나 자유로울 거예요.” (P.129)
카르멘은 한마디로 자유인이다. 야생 동물을 울타리나 새장 속에 억지로 가두어 둔다면, 살아있으되 진정으로 살아있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처럼, 카르멘은 사랑을 원하지만 그것은 자유로운 사랑, 거리낌 없는 사랑이다. 그래서 카르멘이 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각광받는 매력적 캐릭터로 남아있는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카르멘의 악덕마저 미화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분명히 웃으면 칼을 찌르고 총을 쏠 수 있는 영혼의 소유자다, 자신이 직접 그렇게 나서지는 않지만. 그녀는 남을 속이고 강도나 살해당하기 좋은 장소를 돈 많은 사람들을 유인하며, 밀수도 서슴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성적 매력을 십이분 충분히 활용한다.
원작만을 보면 카르멘은 매우 개성적이고 관심 가는 인물이지만, 만만치않게 비중이 큰 인물이 바로 돈 호세다. 그는 카르멘에 빠져 인생을 깊은 나락에 빠뜨리는 불행한 캐릭터다. 오페라에서는 부족하였던 그의 남성적이며 강렬한 카리스마(오페라에서는 오히려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남성미를 상징하며, 돈 호세는 순수한 청년으로만 표현된다)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그는 카르멘을 진정으로 사랑하였다. 그가 그녀를 칼로 찌른 행위를 우리는 비난할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카르멘을 구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카르멘의 존재로 인한 사회의 선한 사람들의 도덕률로 회귀하는 영웅적 결단이다.
돈 호세와 카르멘, 그들은 사랑하지만 결합되어서는 안 되는 관계가 더욱 나았을 것이다. 서로에게 충실하기에는 카르멘은 너무나 자유로웠다. 너무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