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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롬바 ㅣ 지만지 고전선집 41
프로스페르 메리메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일단 완역본이 아님을 밝혀둔다. 옮긴이에 따르면 원전에서 약 60% 정도를 발췌 번역하였다고 한다. 국내 번역본에서는 대안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다. 역자는 지만지에서 완역본을 출간할 것이라고 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표제에서 언뜻 예상되는 로맨틱이나 연애 내용을 담은 소설이 아닐까 섣부른 추측은 터무니없음이 몇 장 넘기지 않아서 드러났다. 이 작품은 코르시카 섬을 배경으로 부친 살해에 대한 복수를 다루고 있다. 메리메는 코르시카 섬에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마테오 팔코네>도 그러하다.
코르시카는 18세기 말까지 독자적인 정체(政體)와 언어를 유지하였다. 따라서 프랑스 본토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와 관습이 존재하는데, 당대에는 현행법보다 더 우세하였다. 즉 명예에 관한 건은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되갚아야할 의무이며, 이를 등한시하면 섬에서는 제대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빚을 갚은 사람들은 소위 산적이 되어 경찰에 쫓기면서도 주민들의 존중과 지원을 받아 살아갈 수 있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어야 오르소와 꼴롬바의 바리치니 가문에 대한 보복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부친의 살해범에 대한 응징에 대한 오르소와 꼴롬바의 인식차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오르소는 본토에 나와서 군대에 복무한 장교로서, 많은 부분 조금 더 프랑스 내지 주류 문화의 세례를 받았다. 따라서 고향의 관습과 본인에게 쏠린 기대와 의무를 이해하면서도 조금 더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길을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다.
반면 꼴롬바는 철저한 코르시카 여인으로서 그 문화와 관습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 따라서 명예에 관한 한은 오빠보다도 한층 적극적이고 과감하다. 그녀는 망설이는 오빠를 침묵으로 압박하며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길로 몰아가기도 한다. 복수에 대한 그녀의 의지는 합당한 정도를 넘어선 집념과 집착으로 비치기도 한다.
“야만적 명예에 광신적으로 집착하고, 이마에 오기가 드리워져 있으며, 냉소적인 미소로 입술이 일그러진, 그 늘씬하고 강렬한 여인이 음산한 전쟁터 같은 곳으로 무장한 젊은이를 데리고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P.71)
“꼴롬바의 음성과 태도에는 위압적이고 무시무시한 그 무엇이 있었다. 코르시카 사람들이 겨울밤이면 서로에게 들려주는 그 무시무시한 이야기들 속의 요정, 그 악의적인 요정이 나타나기라도 한 듯,...꼴롬바는 팔짱을 끼고 입술에 경멸의 미소를 띤 채, 적들의 집으로 시신들을 운구해 가는 정경과 서서히 흩어지는 군중을 바라보았다.” (P.130)
우연히 피사에서 만난 쇠락한 바리치니 노인을 보고 내뱉은 말을 보라.
“두 녀석 모두를 없앨 수밖에 없었어. 이제 가지들은 모두 잘렸고, 그루터기도 썩지만 않았다면 뽑아버렸을거야. 그렇게 칭얼거리지 마. 고통받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나는 두 해 동안을 고통 속에서 살았어.” (P.144)
이 작품은 냉혹하다. 작품 제목으로 삼은 주인공의 언행이 그러하고 작품의 스토리가 또한 그러하다. 법규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그러할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독자의 감정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꼴롬바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여전히 차갑다.
“저 아름다운 아가씨 좀 봐라.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틀림없이 흉조가 어려 있다.” (P.145)